[환자 곁에서]불임엔 안정이 묘약

  • 입력 2002년 1월 6일 17시 39분


산부인과 의사는 환자의 이름을 외우지 않으려 한다. 진료과목의 특성상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산부인과 의사는 또 환자에게 친절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특히 불임클리닉을 찾아오는 환자는 극도의 불안감에 싸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재작년 3월 이 두가지 ‘원칙’을 모두 무너뜨렸던 30대 초반의 불임 여성이 있었다. 내가 이름도 생생히 기억하고, 친절하게 대하지도 못했던 환자였다.

당시 환자의 아랫배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6군데에 흉한 화상 반흔이 있었다. 살 표면이 울퉁불퉁 딱딱했고 색깔도 검게 변해 있었다. 환자는 민간요법으로 쑥 찜질을 받다가 생긴 화상이라고 말했다.

환자는 결혼 전후에 두 번의 소파수술을 경험했다. 이후 월경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임신에 거듭 실패했다.

환자는 여러 산부인과 의원과 한의원을 전전했다. 때로는 찜질방과 점집을 찾기도 하는 등 의술(醫術)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결혼한 지 5년된 불임 여성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2년여의 시간을 ‘닥터 쇼핑’에 허비하다니….

“이제 닥터 쇼핑 그만두세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뜻밖에 야단을 맞은 환자는 처음에 불안해하다가 불임 치료는 의사를 믿고 꾸준히 치료받아야 한다는 설명에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불임검사 결과 환자는 자궁강 내 유착증 증세가 있었다. 딱딱해진 부분을 제거하는 자궁내시경하 유착 박리술을 실시하고 여성 호르몬을 투여해 건강한 자궁내막이 생기도록 유도했다. 3개월 후 환자의 몸에도 변화가 생겨 월경량이 정상에 가깝게 돌아왔다.

“선생님이 그 때 절 야단치지 않았으면 아마 온 몸에 화상을 입을 때까지 계속 다른데를 찾아다녔을 거예요.”

지난해 10월 환자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 환자는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치료하는 데 투자했다.

불임부부에게는 정서적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위 친구 친지들의 지나친 관심이나 간섭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를 격려하고 믿음을 가질수록 불임증 치료효과는 좋다고 단언할 수 있다.

김석현(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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