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수들이 가요계에서 각각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해온 만큼 이들 새음반에 담겨진 의미는 남다르다. 양희은은 삶에 대한 힘있는 중년의 성찰을 노래하고 있고 심수봉은 한(限)의 정서가 주는 카타르시스의 최대치를 선보이고 있다. ‘양희은 30’의 처음과 마지막 트랙은 눈물이 절절하다. 여기에는 양희은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여성 시대’에서 방송한 고 추희숙씨의 사연이 낭송으로 실려 있다.
추씨는 암으로 투병하다가 지난해 숨을 거뒀다. 양희은은 “거친 세상살이에서도 맑은 눈빛을 잃지 않는 추씨의 사연들이 어느날 30년 노래 인생을 꿰뚫는 깨달음을 줬다”며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데뷔 30주년 기념 음반을 추씨에 대한 추모 음반으로 헌정했다.
타이틀곡 ‘그대가 있음에’는 양희은의 어느 히트곡보다 힘이 빠져 있다. 대신 가슴깊이에서부터 아릿한 뭉클함이 마른 목을 긁으며 올라온다. 멜로디를 최대한 억제한 이 노래에는 세상에 대한 희망도 촘촘히 박혀 있다. 그는 “이 노래가 추운날 따뜻한 보리차처럼, 고단한 나날의 쉼표처럼 세상을 어렵게 견뎌내고 있는 이들에 응원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수록곡 ‘나 떠난 후에도’ ‘사랑-당신을 위한 기도’ 등은 양희은이 인생을 되돌아보는 노래로 ‘이상하게도’ 모두 슬프다. ‘나 떠난…’는 세상과 노래의 어긋남을, ‘사랑…’은 진정한 사랑를 슬프게 노래하고 있다. 양희은은 음반 재킷에 ‘서럽고도 슬퍼서 진저리쳐지게 아름다운 시(詩), 그것이 우리네 삶이다’고 썼다.
심수봉은 국내에서 한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가수. 타이틀곡 ‘사랑했던 사람아’도 소절마다 한의 표현이 다르다. 한편으로는 서푼짜리 감상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을 후벼파고 들어오는 강한 떨림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수록된 ‘사랑밖엔 난 몰라’와 더불어 젊은 층들에게 이색적인 노래로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성모의 ‘후회’,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 등을 심수봉 식대로 해석해 부른 노래에서도 심수봉의 한의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 리메이크곡에서 원곡의 가수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자신을 담고 있다.
허엽기자 he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