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축구경기 못지 않게 공연 전시 등 문화행사가 관광객 동원 등의 성패까지 좌우하는 종합적 성격의 축제. 1982년 월드컵을 치룬 스페인의 경우 플라멩코 투우 등 ‘국기 예술’에다 14개 개최도시 특유의 다채로운 문화 행사로 유럽의 변방국이자 미운오리 새끼였던 종전의 이미지를 일거에 벗어날 수 있었다.
공식 문화행사 프로그램이 확정되지 않은 이유는 일단 세계축구연맹(FIFA)의 무성의 때문. 월드컵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 공식 문화행사 프로그램과 일정을 FIFA에 통보했으나 FIFA측에서 차일피일 승인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월 말까지 승인이 나지 않을 경우 전반적인 행사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FIFA가 공식 승인한 월드컵 문화행사 프로그램은 포스터 홍보자료 등에 월드컵 로고 사용이 가능하며 해외 공연 홍보에 큰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개막전까지 5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뒤늦게 승인이 나더라도 단기간동안 충분한 홍보를 기대하기는 힘들어졌다.
FIFA 승인과 홍보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월드컵 문화행사가 계획처럼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FIFA에 승인을 요청한 행사 중 민간 공연단체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이 대기업 등의 협찬을 얻지 못했기 때문.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시집가는 날’, 한미오페라단의 ‘아 하멜’, 서울예술단의 총체극 ‘고려의 아침’ 등 민간단체가 계획중인 대형 공연은 필요 예산이 전액 확보된 것이 단 한 건도 없다.
한 공연기획자는 “대기업의 외면으로 ‘문화월드컵’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향보다 대폭 축소된 상태로 치러질 수 밖에 없으며, 일정 확정조차도 개막일 1∼2개월 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인 소프라노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의 합동공연이 추진되고 있으나 실현 여부는 미지수. 그 외 돋보이는 축제라고는 5월 4일 개막되는 ‘서울공연예술제’ 정도지만 매년 가을에 열리던 서울연극제와 서울무용제를 한데 묶어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
4월에 열리는 국립극장의 ‘세계 춘향 대축제’ 역시 국립극단 국립창극단 등 국립극장 산하단체들의 ‘춘향’ 공연에 러시아 발레단 등 해외단체의 ‘사랑’ 소재 공연물을 묶어놓아 축제다운 통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외 예술가의 공연으로는 세계 톱스타급 성악가인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공연 (6월 12일·예술의 전당)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7월 1,2일·세종문화회관)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의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5월 21∼25일)등이 있지만 해당 기관에서 추진해오던 해외 예술가 초청공연에 ‘월드컵’ 로고만을 붙여놓은데 불과해 예년 공연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
막상 외국인들이 몰려있는 월드컵 전후기간에 한국의 전통을 다각도로 소개할 종합적 성격의 축제가 전무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모처럼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경기 관람후 ‘볼 것 없다’며 바로 일본으로 떠나버리거나 한국의 축구장만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