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토지’를 떠날수 없는 질긴 삶 깨달아…

  • 입력 2002년 1월 8일 18시 07분


‘나남판 토지’는 이전에 솔출판사에서 냈던 판본보다 5권이 늘어나 1∼5부 총 21권(각 9500원)으로 나왔다.

박씨에게 책을 다시 내놓은 소감을 묻자 “할 말은 서문에 다 썼다”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그 대신 그는 ‘자본주의의 상품이 되어버린 문학’과 ‘문학의 본질을 망각해 버린 작가’, 그리고 ‘전체 국가의 행태를 띤 우리 정치’에 대해 한숨을 섞어가며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토지’ 서문에서 박씨는 독자의 끈질긴 요청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이 소설을 절판 상태로 버려둔 데 대해 “‘토지’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71년 암투병의 기간을 포함해 4반세기에 걸친 집필 시간의 고통이 돌아보기조차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상인(商人)과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기술자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차이가 없다면 결국 문학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 의미를 상실한 문학, 맹목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출간을 결심한 것은 그가 몇 달 전 처음으로 작품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평사리에 건립된 최참판댁을 찾았을 때, 벼락처럼 내린 깨달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옥한 평사리 땅 서쪽에, 이념 대결과 수난의 현장이었던 지리산이 발을 걸치고 있는 형상을 목격하고 그는 역경 속에서도 이상향을 지향하는 인간의 질긴 삶을 읽어냈다.

‘나남판 토지’에는 이런 깨우침을 많은 이들과 나누려는 작가와 출판사의 배려가 돋보인다. 판형은 보통의 소설책 사이즈 대신에 한 손에 잡히는 문고판 형태로 만들었고, 본문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활자 크기를 키웠다. 본문에 나오는 낯선 방언에는 그 뜻을 병기했고, 각 장의 소재목도 현대어로 대폭 바꾸었다. 출판사측은 “책의 크기와 활자 등 모든 제작을 독자의 편의와 미적 감각에 맞추려고 했다”고 말했다.

‘토지’의 한글 글자 모양을 형상화한 표지는 디자이너인 윤호섭 국민대 교수의 작품이다. 출판사가 양장본 표지에 재생용지를 사용한 것에서 환경 문제에 각별한 작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윤정훈기자 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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