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립극장 관계자들조차 잘 모르고 지나치던 이 말 그림이 임오년 말띠해를 맞아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은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3층 로비 난간. 옛사람들이 말을 타고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금색 바탕 위에 30마리의 흑마 백마가 등장한다. 그 말의 동세(動勢)가 시원시원하고 무척이나 힘차다. 전체 길이는 약 30m에, 폭은 2.5m.
무심히 넘겨오던 국립극장측이 이 그림에 주목하게 된 때는 임오년 말띠해를 앞둔 지난달.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멋진 말그림이 있다니.” 그래서 국립극장은 이 말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국립극장 연하장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이 그림의 정체를 알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1973년 현재의 국립극장을 건축할 때 설계를 맡았던 이희태건축사무소(현재는 엄이건축)가 책임을 맡아 제작한 것이라는 정도 밖에 알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기자는 직접 현장을 찾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꼼꼼히 그림을 살펴보던 중 그림의 맨 오른쪽 아래에 써있는 ‘남정(藍丁)’이라는 낙관을 발견했다. 남정은 원로 한국화가 박노수(75)의 호다.
남정의 작품이려니 하고 연락을 했으나 그의 대답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국립극장 개관 당시 건축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 말 그림의 원화를 기초로 삼아 대형 벽화를 그리고 싶다구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지요. 제 낙관을 사용해도 되냐고 또 묻길래 그것도 그러라고 했죠. 아마 제게 직접 그림을 맡기면 작화료가 너무 많이 들어갈 것 같아 그들이 직접 그린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어쨌든 저의 말 그림을 확대해 그린 것이고 제가 그린 것은 아닙니다.”
이럴 경우, 이 그림은 과연 남정의 그림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작가가 누구인지 보다는 이 그림이 점점 훼손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극장의 한 관계자는 “이 그림에 대해 30여년 동안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조만간 이 그림을 깨끗이 청소도 하고 보수도 할 계획”이라면서 “이제 올 한 해 국립극장에서 공연뿐만 아니라 멋진 말 그림도 감상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