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담배,돈을 피워라'

  • 입력 2002년 1월 11일 18시 41분


◇담배, 돈을 피워라/타라 파커-포프 지음 박웅희옮김/256쪽 1만2000원 코기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여기자였던 저자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나의 첫 담배는 대학 기숙사에서 야밤 잡담시간에 불 붙인 멘솔라이트였다. 담배산업 측면에서 보면 철 늦은 꽃이었다. 우리집은 반(反)흡연 집안이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담배 회사들이 퍼뜨리는 광고 메시지까지 막아준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나는 낙타가 너무 좋아 카멜 담배 상표들을 수집했다. 고등학교 때는 내면에서 싹트는 페미니스트 정서 탓에 버지니아 슬림을 피우는, 아름답고 출세 지향적인 여자들이 등장하는 광고들을 모았다.…흡연은 알고보니 편리한 습관이었다. 위기 때는 마음을 가라 앉혀 주었고 고뇌에 찬 철학 토론에도 제격이었다. 담배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려운 것은 담배와 처음 만나게 하는 일이다. 바로 그 점이 담배산업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흡연가들은 모두 저자처럼 담배에 관한 첫 경험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있을 것이다. ‘담배피우는 아줌마’(동녘·2001)의 저자 이숙경씨는 “대학1학년 때 첫 담배를 물었는데 ‘너도 여자의 벽을 깨기 시작했구나’하고 축하해 주던 남자 선배가 며칠 뒤 ‘내 여자친구가 담배를 피면 용서못해’라는 말에 열 받아서(!)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우게 됐다”고 고백했다.

어떻든, 이 책은 담배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방방곡곡에서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금연 논쟁에서 가장 큰 줄기인 흡연이 얼마나 건강과 장수에 해로운가 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다. 앞에 인용한 저자 이야기에서 눈치챘겠지만 담배를 ‘장삿속’이라는 키워드로 풀어 내고 있다. 담배산업 역시 좋건 나쁘건 자본주의적 이상의 전형(典型)인 한 산업으로 보고 이를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했다.

실용성이 거의 없는 유해한 기호품을 수십억 인구가 필수품처럼 여기도록 설득하는 데 담배 회사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지, 재배할 품종의 선택에서부터 담배잎을 배합하고 니코틴 함량을 세심하게 조절하여 포장하기까지 그리고 완제품의 배급과 광고에 이르기까지 담배 회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보고서다. 물론, 담배산업의 최종 목표는 기존 소비자들을 계속 붙들어 두고 새로운 흡연자를 끊임없이 발굴하는 것이다.

결론은 ‘자, 이래도 피울꺼냐’ 하는거다. 마치 담배회사들이 함정을 파 놓고 사냥감을 잡은 뒤 사냥감이 죽을 때까지 괴롭히고 있는데도, 그 ‘치명적인 상품’을 계속 피울 꺼냐는 것이 저자의 질문이다.

책에는 담배와 관련한 다양한 통계와 경고성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흡연자 10명 중 9명은 중독자인데 음주자 가운데 중독자는 1명이라는 통계를 보면 담배가 알코올보다 중독성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중보건국장은 ‘빅 타바코’(거대 담배회사)들을 공격할 때 ‘매년 담배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의 수가 승객을 가득 실은 점보여객기 3대가 매일 추락하는 사망자수와 같다’고 말했다.

저자는 다양한 흡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흡연행위는 갈색 이파리가 타면서 내뿜는 니코틴을 혈액 속에 주입하기 위해서가 절대(!) 아니고 단지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이 멋있을 것’이라는 따위의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이숙경씨의 예처럼 ‘홧김’같은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는 것이다.

폐암에 걸린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절대 담배피지 말라”고 호소한데다 새해 담뱃값까지 올라서 금연인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새해, 금연을 결심한 독자들에게 한줄기 철학적 신념(^^)을 가져다 주는 책이길 빌어본다. 원제:Anatomy of an industry from seed to smoke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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