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가 전경린씨 신작 장편 '열정의 습관' 출간

  • 입력 2002년 1월 13일 17시 29분


소설가 전경린(40)의 신작 장편 ‘열정의 습관’(이룸)이 나왔다. 이전 작품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에서 대중적 연애소설을 시도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도발적인 ‘성애소설’을 선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30대 여성들이 체험한 다양한 육체적 경험을 수예품처럼 이어붙인 이 소설의 주제는 한마디로 ‘여자의 몸이 기억하는 남성’이다.

여러 남성을 경험한 여성들은 상대 파트너를 관념적인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인 물질로서 추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추억의 도구는 남성의 ‘할딱이는 숨소리’ ‘체액의 비릿한 냄새’ ‘성기의 촉감’ ‘밀착된 체위’ 같은 노골적인 것이다.

37세 독신인 프리랜서 작가 미홍을 비롯해, 남성과의 다양한 경험에도 오르가즘을 모르는 인교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첫 경험이 갖는 의미나 오르가즘의 존재이유 등 성관계에 얽힌 상처의 기억 등에 대해 이들이 나누는 진지한 이야기가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의 추억담에는 ‘섹스치’인 애인의 친구, 소포 대신 자기몸을 배달하는 택배기사, 돈을 위해 만난 중년 사업가 등 20명 가까운 남성이 조연이나 단역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일회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들과의 관계속에서 ‘사랑’ 같은 관념적 가치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 시대 바람난 30대 여성의 ‘킨제이 보고서’(1948년 미국에서 발표된 성 행위에 대한 최초의 사회학 연구서)처럼 읽힌다.

때론 노골적인 묘사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독자를 음험한(?) 독해로 유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오르가즘’을 ‘방울소리’에 비유하는 등 탁월한 은유법으로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두고 있고, “섹스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도 복제품으로 손쉽게 대체할 수 없는 수공품”이라는 식의 논설을 곳곳에 포진시켜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씨가 “사랑 속에서 성은 무한히 자유로운 무애지심에 이르러야 한다”고 밝힌 작품 의도가 독자들에게 유효하게 전달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30대 후반인 한 남성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각인된 섹스의 상처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최초의 작품이 될 것”이라는 문학사적 의미를 두면서도 “이런 도전이 이 시대의 단면을 예리하게 드러내는 예술적 성취를 이뤘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페미니즘 진영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은 듯하다. 한 여성학 연구자는 “여성이 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의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이 작품에서는 여성이 성에 대해 주체적으로 발언하는 듯하지만 남근주의적 시선으로 본 성적 환타지의 혐의가 종종 눈에 뜨인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윤정훈기자 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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