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8시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있는 심장혈관병원의 한 부정맥 시술방. 언제나 그랬듯이 김성순 원장(57)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의료진을 독려하고 있었다. 곁에 있던 이문형(42) 안신기 교수(38)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자의 허벅지 위쪽을 절제한 뒤 ‘혈관 고속도로’에 긴 관을 삽입했다. 목적지는 심장. 관은 혈관을 따라 우심방에 들어간 뒤 중간막을 관통해 좌심방에서 멈춰섰다. 관 끝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심장이 박동을 하면서 내보내는 전기신호가 풍선 주변에 있는 64개의 전기감지기를 통해 컴퓨터 모니터에 표시됐다.
“바로 이거야. 이 부분을 고주파열로 태워야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구.”
전임의와 간호사 2명도 바쁘게 움직였다. 김원장의 ‘오케이’ 소리가 반복됐고 1차 시술은 한 시간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자랑하는 부정맥 전문 치료팀. 86년 김원장이 미국 워싱턴대 의대 조교수 생활을 접고 연세대로 돌아오면서 출범했다. 이 부정맥 치료팀이 86년 이후 지금까지 시술한 환자는 모두 2832명.
이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부정맥이란 심장 박동이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려지는 질환.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일부는 졸도하거나 급사(急死)할 수도 있다. 프로야구팀 롯데자이언츠의 임수혁 선수(33)도 부정맥으로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져 1년이 훨씬 넘게 투병을 하고 있다.
심장은 피를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우리몸의 구석구석에 보내는 인체내 혈액펌프로 전기 자극에 따라 움직인다. 우심방에 있는 동방결절이라는 곳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순식간에 심장 전체에 퍼진다. 심방이 오므렸다가 펴지면 곧바로 심실이 박동하면서 피를 돌게한다. 심장 박동은 맥박으로 나타나며 1분에 60∼100번 뛰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심장의 전기시스템이 망가지면 60번 이하나 100번 이상으로 뛰는 부정맥 증상이 나타난다.
안교수는 “부정맥에는 맥박이 너무 빨리 뛰는 빈맥, 너무 느리게 뛰는 서맥이 대표적이고 규칙적으로 뛰다가 한 박자씩 건너 뛰는 조기박동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빈맥 중 심방빈맥은 심방이 1분에 400∼500번 뛸 때 심실은 100∼200번 뛰는 것. 동방결절 외에 엉뚱한 곳에서 전기신호가 생겨 나타나는 병으로 방치하면 심혈관에 핏덩이가 생기면서 중풍에 걸릴 가능성이 5배 이상 높아진다.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으면 70% 이상은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심방의 빈맥 발생 부위를 찾아 고주파열로 태우는 전극도자 절제술을 하기도 한다. 86년 이 시술법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연세대 치료팀의 시술 성공률은 99%. 과거의 외과적 수술이나 직류 전기를 이용한 시술법을 대체해가고 있다.
서맥은 동방결절이 고장나거나 전기가 지나는 길에 가로놓인 장애물 때문에 생긴다. 순간적으로 심장 박동이 정지돼 졸도할 수 있다. 심장박동기를 몸에 넣는 시술을 한다. 박동기의 수명은 7∼10년 정도이며 매년 두차례 검사를 받는게 좋다. 현재 심장혈관센터 심장박동기클리닉에는 전국의 환자 700여명이 등록돼 전문 의료진의 관리를 받고 있다.
부정맥 중 가장 무서운 증상이 심실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심실빈맥이다. 흔히 ‘급살(急煞)맞는다’고 말하는 병을 일으킨다. 5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으면 1시간 안에 숨질 가능성이 높다. 가끔씩 졸도하거나 집안에 급살 내력이 있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심전도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치료팀은 최근 병원에 ‘3차원 심장 지도 작성 시스템’을 들여 놓았다. 전기 감응 장치가 달린 풍선을 심장에 삽입한 뒤 심장이 박동할 때 전기 흐름을 3차원 지도로 작성하는 장치. 이 장치를 통해 부정맥의 원인 부위와 시술 부위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자랑거리를 꼽는다면 환자의 80% 이상이 지방의 의사들이 치료를 부탁하며 이송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죠. 심장혈관센터와 지방 116곳의 의료진이 선진국형 이송 시스템을 구축한 겁니다. 그만큼 신뢰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김원장의 말이다.
차지완 기자 maru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