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알코올 전문가’로 통한다. 두산의 ‘야전 사령관’ 최형호 마케팅 담당 상무(40). 하루가 멀다하고 변하는 소비자의 입맛만 연구해 새로운 술을 만들어내는 게 그의 임무다. 90년대 이후 소주의 역사는 최 상무와 같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가 업계의 ‘독종’으로 통하는 것은 목표를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기 때문. 창의력과 관련된 우뇌를 발달시키기 위해 왼손에 악력(握力) 증강기를 쥐고있다시피 했고 운전도 항상 왼손으로 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주와 ‘친해지기’ 위해 한잔도 못 하던 소주를 매일 1병씩 집으로 들고 와 마신 것도 업계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그 결과 소주시장에서 그의 손을 탄 제품은 대부분 ‘대박’을 터뜨렸다. 86년 진로에 입사한 뒤 93년부터 본격적으로 제품개발에 뛰어든 그는 데뷔 첫해 업계 최초로 돌려 따는 소주 ‘진로 골드’를 개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소주는 병따개를 써야 해 불편이 많았지만 이 제품 개발 이후 타사들도 비슷한 제품을 내놓아 지금은 병따개를 써야 하는 소주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후 상품개발팀 초대팀장을 맡으면서 ‘참나무통맑은소주’를 선보여 또 한번 자사 브랜드의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수도권에서 수요가 급증하면서 커진 유통지배력 덕택에 다른 제품도 잘 팔리는 효과를 거두게 된 것.
98년에는 자리를 경쟁사인 두산으로 옮겨 ‘대박 신화’를 이어갔다. 마케팅부장으로 배치되자마자 소주 업계 최초로 여성을 광고모델로 등장시켜 화제를 낳기도 했다.
최 상무의 역작은 뭐니뭐니해도 최근 소주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산(山)’. 지난해 1월 탄생과 함께 던져진 ‘녹차와 소주의 깨끗한 만남’이란 슬로건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시작과 끝 모두가 차별화된 ‘산’은 금방 소주시장의 화두가 됐다. ‘최단기간 최고 판매량’이라는 신기록도 당연 ‘산’의 몫이었다.
“소주의 독(毒) 성분을 완화하고 고급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제품을 연구하다 녹차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제품의 성공에 대해 자신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좋은 반응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산’은 현재 1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중이며 수도권을 기준으로는 15%가량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