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직후 한달 지옥훈련이 인생 바꿔◆
씨티은행 입사 5년이 되어가는 기업심사부 문은영부장(34)입니다. 하는 일은 기업이 은행 돈을 제대로 갚을 수 있나 심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전공이 식품영양학이라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입행 후 받은 트레이닝이 절 바꾸어 놓은거죠.
전에 4년간 몸담았던 외국계 은행은 10년이 지나야 연수 기회가 주어졌죠.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랄까. 당시에는 불만이었어요. 정말 직무에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때 배울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97년 8월 씨티은행에 입사해 6개월만에 제 ‘인생’을 규정짓는 일이 발생했죠. 필리핀 마닐라의 씨티은행 아시아 연수원에서 보낸 한달간의 지옥훈련. 아마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듣도 보도 못한 3개 기업에 대한 500쪽이 넘는 자료를 주고 신용분석서를 내라는 과제 때문에 수 많은 밤을 새야 했거든요. 새벽 3, 4시면 PC작업실 바닥에 그냥 널부러졌던 연수생들, ‘내일 난 나갈거야’라며 나자빠졌다가 다음날 더 혹독하게 밤을 새는 사람들(우리 동기는 없었지만 전 기수에는 포기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대요). ‘프로’로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어딜 가더라도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때문에 다들 지옥훈련을 받고 싶어하죠. 이거 하나로 끝나냐구요? 아녜요.
입사 이후 모두 15개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거쳤어요. 매년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주어지고 이중 해당 직무에 필요한 과정을 보스랑 상의해서 결정하죠. 휴먼리소스팀에서 이젠 리더십교육을 받아야할 때라고 하네요. 5년 뒤 리더로서 모양을 갖추기 위해 미리 준비하라는 거죠. 리더십교육과 은행 상품 및 리스크분석 등에 대한 좀 더 심화된 과정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을 만나 한층 업그레이드된 절 발견할 때 있죠? 그때 기분 ‘캡’입니다.
◆직군별 '맞춤 트레이닝'…한 우물 파게◆
5년 뒤 제 꿈이 뭐냐구요. 세계 일류의 브랜드 매니저가 되는 겁니다. 지나온 5년은 그 기초를 닦은 거구요.
참 제 소개를 안했군요. 제일제당 식품CMG 레또BM에서 근무중인 최재규(32)입니다. 지방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죠. 즉석 요리제품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어요. 96년 입사 때만 해도 전체 인력이 다 연수원에 들어가 업무의 ‘A부터 Z까지’ 모두 배우곤 했죠. 다들 배우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배운거죠.
아직도 이런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회사들도 있다고 하는데 2년전에 우리 회사에서는 사라졌습니다. 한마디로 직군별로 맞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고르는거죠. 회사 인트라넷에 들어가면 직군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제 전공은 마케팅입니다. 입사후 4년간은 마케팅 기본교육과 마케팅 심화과정을 들었구요. 5년차에 본격적인 3개월 트레이닝프로그램을 교육받았어요. 강의 형태는 거의 없습니다. 일단 4명씩 한 팀이 됩니다. 저희 팀에 주어진 과제는 ‘천연조미료’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어요. 신제품 컨셉트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연구소와 어떻게 협의할지, 생산은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짜내는 것입니다.
결과물은 반드시 CEO에게 보고한 뒤 책자로 만들어집니다. 그 책자는 차곡차곡 쌓여 다음 마케팅과정을 듣는 후배들이 이용하게 되죠. 원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정하면 간부들은 등을 떼밀어 가라고 하죠.
‘바쁜데 연수는 무슨…’이란 분위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간부의 인사고과 점수중에 후진 양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앞으로 5년은 수요예측 분야와 소비자조사 분야의 트레이닝을 받을 계획이에요. 입사 8년 이후엔 정규 MBA를 회사에서 보내주니 이것도 도전해 볼 생각이구요.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