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팀이 라운딩을 하면서 ‘나이스 샷’을 연발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막상 계산대에서는 금융권 최고경영자(CEO)급이 12명이나 있었지만 스폰서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더치 페이하자”는 말을 꺼낼 틈도 없이 ‘씨티맨’들은 카운터에 줄을 서서 각자 것을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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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지 않아요? CEO급 임원 12명이 각자 카드를 들고 카운터 앞에 도열한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이런 상황이면 누구 하나가 턱 나설 법도 한데 그게 안되더군요. 내심 내가 낼까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는데 어떻게 하겠어요.”(제일투자증권 황대표)
씨티 출신들은 이를 가장 ‘씨티적(的)’이라고 표현한다. 업무 외에는 서로 간에 별 기대를 안하는 것. 같은 출신이라고 해서 가질 법한 섭섭함이나 기대감이 없다. 이들은 ‘씨티 인맥’ 단어 자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티은행만의 ‘특별한 문화’라기 보다 그냥 ‘미국적인 자연스러움’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인맥’하면 연줄을 통해 안되는 것을 되게 하고 서로 끌어주는 이미지를 풍기잖아요. 씨티은행에서는 그런 것은 배우지 않았어요. 너무 차가운가요?”
69년 씨티은행에 입사해 ‘왕언니’ 같은 금융감독원 이성남부원장보(55)의 설명이다. 그녀는 서울대 정운찬교수의 추천으로 99년 금감원에 특채된 금감원 첫 여성임원. 최명희 은행검사팀장도 씨티은행 출신.
씨티은행 출신으로 금융권에서 임원급으로 활약중인 인물은 은행 증권 보험권에만 20여명이다. 이중 금융기관 CEO가 서울은행 강정원행장, 한미은행 하영구행장, 굿모닝증권 도기권사장, 제일투자증권 황대표를 비롯해 5명에 이른다. CEO가 씨티은행 출신일 경우 주요 임원들도 대부분 함께 일했던 씨티 출신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행장이 씨티은행 출신인 한미은행과 서울은행은 각각 4명과 2명의 임원이 씨티은행 출신이다. 서울은행 김명옥 상무도 강행장이 영입한 케이스.
“처음에는 조직 내 반발도 적지 않았죠. 하지만 서로 ‘프로’로서 인정하기 때문에 같이 일을 하려고 한 것 뿐일 겁니다.”(한미은행 원효성부행장)
기자가 인터뷰한 10명 가까운 씨티은행 출신은 한결같이 씨티은행 출신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갖고 있었다. ‘쟤가 하면 무조건 믿는다’는 식이었다. 함께 일했던 상사에 대한 충성심은 국내 기업보다 강한 느낌이었다. 이것이 ‘끈 이라면 끈’이었다.
“‘지옥훈련’을 통과한 훈련소 동기 같은 감정 알죠? 100개 국에 산재해 있는 씨티은행에서 추려놓은 업무 매뉴얼대로 움직여야 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내부고발 당하는,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교육을 받는 ‘정글’에서 서바이벌한 사람들이기에 믿는 거죠.”(교보생명 장부사장)
씨티 출신들은 개인적으로 똑똑했던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새로운 인간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굿모닝증권 도기권사장이 털어놓는 90년대 초반의 일화. 당시 영업담당으로 명동에 대출 세일을 나갔던 도사장. 우연히 국내 모 은행에 입사한 대학 동기생을 만났다. 여름이어서 땀에 절은 모습으로 만났지만 땀을 흘린 이유가 달랐다. 그 동기생이 명동을 헤집고 다닌 이유는 영수증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상관으로 모시던 임원이 사용한 접대비의 영수증이 모자랐던 것이다.
“씨티 은행하면 ‘선진 금융’을 떠올리지만 특별한 게 없어요. 회사 수익 외의 잡다한 일에 신경쓰지 않도록 하고 여기에 걸맞는 인물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 때 나보다 훨씬 똑똑했던 친구에게 그런 일이나 시키다니….”
그리고 몇 년 뒤 도사장은 한국에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목격해야 했다. 씨티 출신들은 IMF가 외국계 은행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IMF가 외국계 기업 출신의 숨은 애환까지 바꿔놓지는 못했다.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던 80년대에는 아파트 경비원까지 그러더군요. 미국회사 다니는데 별일 없느냐구요. 지금도 ‘선진금융이라는데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반발 심리가 있는 게 현실입니다.”(제일투자증권 황대표)
교보생명 장부사장은 지난해 서울은행 부행장으로 있으면서 고등학교 선배와 동기들을 퇴직시킨 뒤 쏟아진 싸늘한 시선을 기억하고 있다. ‘그 자리에 있으면 봐 줄 수 있는 것 아니었냐’는 얘기가 여기 저기서 들려왔던 것. 장부사장 뿐만 아니라 한국 직장에 몸담게 되는 씨티 출신들은 최소한 1년 간은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도사장과 장부사장의 이야기는 씨티은행에 국한된 것이라기 보다 세계적인 선진 기업에서 사원들이 어떤 자세로 일하며 조직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어떻게 몸에 배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 능력있는 인재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걸러지고 길러지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일부 씨티 출신 금융인들은 “이제서야 씨티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데 자꾸 과거 직장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취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씨티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쏟아지는 관심을 애써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팔려온 용병’ 같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외국계 금융기관 출신이 ‘해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만드는들 수 있는 실험 무대에 우리를 배우로 올린 것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글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사진 전영한기자 coopjyh@dogna.com ·그래픽 정인성기자 71j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