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섹스파일] 왕건의 피임 작전은 실패?

  • 입력 2002년 1월 18일 13시 31분


남녀가 섹스할 때 여성이 남성보다 소극적인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면 ‘임신 공포증’을 들 수 있다. 기분 좋게 사정한 후 손 한번 탁탁 털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섹스가 끝남과 동시에 불안감에 싸인다.

때문에 피임의 역사는 섹스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고대 시대라 해도 생기는 대로 무작정 낳을 수는 없는 일.

기원전 2천년대에 제작된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보면 당시 사람들은 악어똥, 꿀, 천연 사이다 등으로 만든 고약을 질 위에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1세기경 그리스 의사인 ‘산 디오스코리도스’는 섹스 후 후춧가루를 여성의 질에 삽입하면 임신을 막는 피임효과가 있다고 권장했으며, 4세기경엔 정자의 활동성을 줄이고 정액을 응고시키기 위해 잘 빻은 배추 꽃잎을 섹스 후 여자의 질 속에 삽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다산’(多産)을 미덕으로 삼았던 농경사회였지만 원치 않는 임신은 있게 마련이었다. 우리의 토종 피임법 중 사서(史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역시 체외사정. 체외사정과 관련해 구전되어 오는 웃지 못할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후백제와의 나주전투에 수군 총사로 출전한 왕건(고려 태조)은 어느 날 나주 인근의 한 시냇가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마침 훗날 왕후 자리(장화왕후)에 오른 오씨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자태에 반한 태조는 오씨를 불러 바로 잠자리를 함께한다. 오씨가 미천한 신분이어서 임신을 원치 않은 왕건은 돗자리 위에 체외사정을 했으나, 이를 눈치챈 오씨는 황급히 ‘그것’을 다시 빨아들여 임신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가 바로 고려 제2대 임금인 혜종. 후세 사람들은 혜종의 얼굴에 새겨진 돗자리 무늬가 ‘그때’ 생긴 무늬라며 혜종을 가리켜 ‘주름살 임금’이라 불렀다고 한다.

어쨌든 피임이 더 이상 여성만의 고민인 시대는 지나갔다. 계속된 연구 성과로 효과 100%의 남성 피임약이 출시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효과가 좋은 남성 피임약을 개발한다 해도 피임약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 이선규/ 유로탑 피부비뇨기과 원장 > www.urot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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