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나는 ‘암굴왕’ 등 소설을 빌려다 읽곤 했다. 공부하지 않고 재미있는 책만 읽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무렵 회사원이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보물이 있었다. 낡은 책장에 가득 채워놓은 책들이었다. 노년에 그 책을 읽겠다는 각오였다.
나는 마흔이 됐을 때 아버지가 모은 책을 보고 흐뭇하게 생각했지만 이미 그 책들은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 버렸다. 독서도 건강과 시간을 과감히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동안 전문서적 이외에 체계적인 독서는 꿈도 못 꿨다. 그 무렵 어느 후배가 십 년을 잡고 유학을 가서 공부하는 것, 출마하는 것, 마음먹고 독서를 하는 것이 다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걸 계기로 나는 아버지의 곰팡내 나는 책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남겨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발견한 ‘지옥변’이라는 일본작가의 소설은 지금도 내 가슴에 화상같이 남아있다. 한 화공이 영주로부터 지옥도 제작을 의뢰 받았다. 화공은 온몸으로 느끼지 않고는 한 획도 그릴 수 없었다. 그는 항아리 안에 매를 숨겨놓고 방으로 제자를 부른다. 제자를 쇠사슬로 묶고는 매를 풀어 덤비게 한다. 경악하는 제자의 눈동자를 보고야 흰 종이 위에 한 획이 쳐졌다. 그림의 마지막은 지옥 불에서 신음하는 왕비의 모습이었다. 그는 처절하게 죽어 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아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영주에게 부탁했다. 한 젊은 여자가 탄 휘장 덮은 가마가 준비되었다. 영주가 가마에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다. 화염이 혀처럼 솟아오르면서 불에 타 일그러지는 여인은 바로 화공의 딸이었다. 화공은 딸을 보면서 작품을 완성하고 자살한다. 치열한 예술지상주의자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책 속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존경하는 시인과 철학자, 정치인, 그리고 한 시대를 살다가 간 뛰어난 선인들도 있다. 노력에 따라서 그들을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읽기 힘든 책은 새벽 맑은 정신에 몇 장씩 읽어나갔다. 루소의 ‘참회록’, 단테의 ‘신곡’ 등이 그랬다. 지하철 안이나 기다리는 시간에는 소설을 읽었다. 저녁 텅 빈 사무실에서는 돋보기를 끼고 ‘쿼바디스’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정성을 쏟아 읽은 책마다 번호를 매겨 나갔다. 쉽게 빨리 읽도록 만든 대중에 야합한 책은 치지 않았다. 어느새 십 년이 지났다. 돌아보니 일을 하면서 약 1300권을 읽은 셈이다.
새해들어서는 ‘레모네이드’(2001년,좋은책만들기)를 읽었다. 실패에 정면으로 맞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이 책은 나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해줬다. 세상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나 좌절의 늪에 빠진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부터 환갑까지 다시 2차 10개년 독서계획을 세운다. 깊은 밤 주위가 소리 없이 적막할 때 책을 드는 나의 마음에는 영원한 평정이 깃듦을 느낀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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