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나온 성실한 작품에 대한 응당한 독자들의 평가라고 봅니다. 기둥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30대 전문직 독신여성 두 명(세진, 인혜)이 대학시절 이후 다시 만나 그들의 현재와 과거의 삶을 들추며 여성은, 인간은, 사랑은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물어 가는 것입니다. 언론에 소개된 평들을 읽어 보았더니 많은 분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코드로 이 소설을 읽으셨더군요.
그런데, 제게는 좀 다르게 읽혔습니다. 여자냐 남자냐를 떠나 주인공 두 사람의 삶의 방식이 크게 구별되더군요. 거칠게 말하자면 세진은 ‘앎’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고 인혜는 ‘삶’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세진은 독서광입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서도 주사바늘 꽂힌 손을 불편하게 움직여 가며 책장을 넘기고 밑줄을 긋습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욕망의 삼각형, 보로미안의 매듭, 늑대인간,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종교와 정신분석, 유혹에 관하여….뭐, 그런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는 인혜는 이렇게 속으로 묻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중층구조를 가진, 얼마나 왜곡된 곡면들로 이뤄진 존재인데 저런 책으로 이해한단 말인가.’(맞는 말씀!)
아무래도 저 역시 직업적으로(^^) 책 속에 파묻혀 있다 보니 ‘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세진이라면 아마 인터넷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 또 다른 책들을 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앎’보다는 ‘삶’에 충실한 인혜쪽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세진은 많은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성불능 사랑불능 삶의 불능에 가위눌립니다. 급기야 신경정신과를 찾아 자신의 상처와 고통의 뿌리를 찾지요. 그리고 홀연 여행을 떠납니다. ‘사랑을 하려면 야하고 뻔뻔스러워 져야 함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때로 우리는 한권의 책으로 이 어둠같은 삶의 길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결국 책은 남의 경험, 남의 생각일 뿐 내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삶은 온전히 ‘내 것’입니다.
의문과 번민으로 괴로울 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깊은 대화를 가져보면 의의로 해답이 나올 때가 더 많았던 것이 제 경험입니다.
벌써 주말입니다. 한주의 피로를 말끔히 푸시고 또 다시 힘찬 한 주를 맞이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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