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시련 딛고 고국 무대 서는 발레리나 강수진 인터뷰

  • 입력 2002년 1월 22일 11시 21분


발레리나 강수진(35)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긴 꿈을 꿨다.

그 꿈은 지독하게 화려하면서도 아프고 생생한 것이었다.

99년 ‘카멜리아의 여인’으로 ‘무용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브느와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받으면서 화려한 시절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정강이의 치명적인 부상과 재기를 위한 15개월간의 몸부림. 그의 20여년 발레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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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시련을 극복한 강수진이 30,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카멜리아…’로 고국 무대에 선다.

스포트라이트와 어둠으로 가득찬 꿈에서 그를 흔들어 깨운 것은 무엇일까. 발레일까 아니면 사랑의 키스?

강수진은 11일 독일에서 터키인 매니저 둔치 서크만(42)과의 혼인 신고로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7, 22일 두차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갑작스러운 결혼 신고가 드라마 같다.

“서크만과는 친구로, 애인으로 10년 가깝게 사귀었습니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내가 모르는 가운데 혼자 속을 많이 태웠대요.”

-서크만의 어떤 매력이 ‘공주’를 사로잡았나.

“같은 무용수 출신인 서크만은 누구보다 발레리나로 살아가야 하는 나의 육체적, 정신적 고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부상을 했을 때도 서크만은 흔들림이 없었어요. 단지 ‘걱정말라. 틀림없이 낫는다’고 위로했죠.”

-부상은….

“99년 9월 ‘지젤’을 준비하는 데 걸을 수가 없었어요. 병원을 찾았더니 왼쪽 정강이뼈에 금이 갔대요. 차라리 부러지면 회복이 빠르다면서. 5년 전부터 통증이 있었는데 무용수는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문제였습니다.”

-부상 중 무얼했나.

“많이 울었어요. 난 잘 울어요. 무용수가 부상을 할 수 있지만 ‘왜 하필 가장 춤을 잘 출 수 있는 이 시기에…’라는 원망이 많았죠. 회복이 느려 평생 낫지 않을 줄 알았어요. 이때 본 사람이 20년 동안 만난 사람보다 더 많아요. 무대가 사라진 발레리나의 삶에 차츰 적응했지만 행복할 수는 없었죠.”(강수진은 혼인 신고 뒤에도 곧바로 연습장을 찾을 정도로 소문난 연습벌레다.)

-지난해 4월 중국과 홍콩 공연이 재기 무대였는데.

“공연이 끝난 뒤 또 울었죠. 몸이 굳어 제대로 춤을 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발레를 선택할 것인가.

“발레를 시작하면서 모든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습니다.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어요. 음악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후배들에게 우상이다. 당신처럼 되려면 어떤 점을 배워야 하나.

“난, 발레의 테크닉은 두 번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장르의 예술을 하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인내심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유학을 가야 하나.

“외국에서 주로 활동해 국내 발레계 사정은 잘 모르지만 최근 발레 팬이 늘고 시설도 좋아진 것 같습니다. 예술가를 뒷받침하는 환경이 좋아야 예술이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또 글로벌해요. 특히 발레에서는 ‘스텝 하나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문화와 사람에 대해 제대로 배워야 좋은 무용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국립발레단의 주역이었던 김지영이 최근 해외발레단 도전을 선언했는데.

“국내 무대에 만족하지 못하는 지영이의 욕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직 22세로 젊은 편이어서 가능성이 있어요. 지영이는 클래식의 기초가 튼튼해 모던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우리 발레단만 해도 16개국 출신의 무용수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정착할 생각은….

“항상 생각하죠. 언젠가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내고 싶습니다.”

-무대는 언제까지….

“난, 나이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스무살이 되는 것은 싫어요. 나이가 들수록 편안하고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몇 살까지라고 못박긴 어렵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 설 생각입니다.”

-‘카멜리아의 여인’은 어떤 작품인가.

“창녀와 귀족 청년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얘기죠. 난, 책을 읽을 때 몇 번을 읽고도 또 울었어요. 이 작품은 한마디로 어려운 발레가 아니라 가슴이 찡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발레입니다.”

-공연에 앞서 팬들에게 한마디….

“좋은 공연으로 팬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멋진 발레를 즐기세요.”

공연은 오후 8시. 2만∼12만원.

KT, 세종기술투자, 세종증권 협찬. 1588-7890

김갑식 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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