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깊이 있는 사진 미학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서울의 대표적 화랑에서 잇달아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주자는 황규태 민병헌 주상연 황정혜 등. 이들 사진의 공통점은 ‘낯설게 하기’ 다.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을 극도로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낯설게 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다.
황규태의 놀이 연작의 경우, 컴퓨터 모니터라든지 문구점에서 파는 스티커 혹은 알약 등을 찍어 사람 크기로 확대한다. 그러면 더 사실적이어야 할텐데 결과는 정반대다. 전혀 다른 모습이다. 비사실적이고 낯선 것이 되어버리는 역설. 황규태의 이같은 사진들은 실험적이고 경이롭게 다가온다.
민병헌의 사진 몸 연작은 사람 신체의 일부를 극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한 편의 추상화같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황정혜 김수강 조성연 등 젊은 여성 작가와 함께 ‘look into’ 전에 사진을 출품하는 주상연의 먼지 연작도 마찬가지다. 주상연은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먼지를 촬영해 보여준다. 그러나 그 형상은 전혀 먼지가 아니라 마치 우주 천체 사진을 보는 듯하다. 때로는 정자가 유영(遊泳)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촬영 기법은 과학용 사진 등에 이미 시도되어 왔지만 순수 사진 자체의 미학을 위해 이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들어서 이들에 의해서다. 따라서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한국 사진의 새로운 미학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늘 고정된 대상을 찍는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처럼 인화되어 나타나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고정된 객관적 대상이지만 결국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는 주관적인 사진작품이라는 주상연의 말처럼 그것은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낯설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각적 혼란이기도 하다. 사실이되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사실 같아 보이지 않는, 혼란이다. 하지만 인간 지각과 감각의 한계에 대한 통쾌한 폭로이자 과감한 도전이다. 그것은 곧 2002년 한국 사진미학의 새로운 도전이다.
▼전시안내▼
황규태=개인전. 2월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02-733-8945.
look into전=주상연 김수강 조성연 황정혜 4인전. 25일부터 2월7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갤러리사간. 02-736-1447
민병헌= 한국미술의 눈 전 출품.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 02-737-7650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