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일본의 하이쿠 시인, 바쇼가 어느 보름날 여우를 만났다. 여우가 바쇼의 시를 비웃으며 그 정도의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코웃음을 치고, 위대한 시인은 여우에게 인정받지 못해 고민에 빠진다.
바쇼는 한달 내내 옛 시를 읽고 새 시를 쓰면서 여우가 깜짝 놀랄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달이 둥글게 차오른 날 밤, 바쇼는 여우가 기다리는 벚나무로 갔다. 인사를 한 뒤 눈을 감고 하이쿠 한수를 읊었다.
오래된 연못/개구리 뛰어든다/
물소리 퐁당
하이쿠는 일본 고유의 시 형식으로, 17음절로 된 짧은 시지만 그 속에 ‘우주를 담는다’고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여우는 “조금 낫군”이라고 말한 뒤 등을 돌렸다.
바쇼는 다시 고민 속에 한달을 보냈다. 시는 마음먹은 대로 나와주지 않았고 머릿속은 여우앞에서 쩔쩔매게 될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보름이 됐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시 한수가 흘러나왔다.
여름 달 위로/여우 꼬리 끝처럼/
흰 산봉우리
여우가 헉, 숨을 들이쉬더니 벌떡 일어서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완벽한 시를 쓰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바쇼는 놀라 “이 시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가” 물었다. 여우 왈,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어요?” 여우는 철벅철벅 강을 건너며 소리쳤다. “그 시에는 여우가 들어 있잖아요.” 바쇼는 그 때부터 좋은 시란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이의 예술적 안목을 성큼 높여줄 그림책이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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