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엄마돈 몰래 꺼내다… '들키고 싶은 비밀'

  • 입력 2002년 1월 22일 16시 41분


비밀을 들키고 싶다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오히려 누가 알까 봐 가슴 졸이며 혼자서만 간직하는 비밀을 들켜버리고 싶단다.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겪었음직한 일이다. 비밀의 무게가 점점 커져 드디어는 혼자서 감당해 내기가 버거울 때 비밀을 털어놓은 일기장을 슬며시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든지, 혹은 자신의 얘기를 마치 친구 얘기처럼 하면서 가족들 눈치를 살피던 경험은 누구나 한 두번 쯤 있을 것이다.

아홉 살 은결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러나 할인점 반찬 코너에서 일하시는 엄마와 치주염으로 고생하시는 아빠는 은결이 바라는 것을 다 해 줄 수가 없다. 게다가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는 형은 은결이가 컴퓨터를 만지기만 해도 눈을 부라린다. 엄마가 찬장 속 낡은 지갑 안에 돈을 모으는 것을 알게 된 은결이는 언제부턴가 그 지갑에서 돈을 꺼내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날도 친구랑 미니 카를 사기 위해 지갑에 손을 대다가 유리컵 한 개가 떨어지고 말았다. 허둥지둥 유리조각을 치우긴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던 작은 조각 하나가 발뒤꿈치에 박혔는지 그 날부터 발이 아프고 점점 부어오른다. 어쩜 절름발이가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자기의 고민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차라리 엄마가 지갑을 열고 돈을 확인해 버렸음 하는 마음이 굴뚝 같다. 차마 제 입으로는 하지 못할 말을 엄마가 먼저 알아챘으면, 벌을 받더라도 하루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늘 바빴던 엄마는 은결의 변화를 쉽게 눈치 채지 못한 채 결국엔 친구 엄마를 통해서 아들이 한 짓을 알게 된다. 엄마는 아들의 잘못을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간식을 해 놓고 반갑게 맞아주는 대신 아이를 빈 집에 들어오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비밀이 탄로 나자 그것에 대한 뉘우침보다 매가 더 무서운 아이 은결이를 보면서 문득 엄마의 자리에 있는 나는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역시 어린 아이일 뿐인데….

아이들의 심리를 잘 그려낸 이 이야기는 ‘나쁜 어린이 표’와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 황선미씨의 작품이다.

오혜경 주부·서울 강북구 미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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