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46.1%였다.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이런 사례는 세계 영화계에서도 경이로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스크린쿼터제도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적인 추세다.
지난해 7월 세계무역기구(WTO)는 33개국 대표들과 WTO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52개국의 문화관련 비정부기구(NGO)모임인 ‘문화적 종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INCD)는 총회에서 “문화상품은 일반 상품과 다르므로 국제무역논리에 지배돼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도 총회에서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문’을 채택하고 “문화를 일반 경제상품이나 소비품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각국은 문화정체성을 위해 현실에 맞는 다양한 규제나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런 국제적 흐름속에서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는 크게 주목받고 있다. WTO 세미나와 INCD 총회에서 한국은 공식 초청돼 스크린쿼터제의 효용성을 발표해 열띤 호응과 부러움을 받았다. 또 프랑스 국회는 독일, 영국 등 유럽 각국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음달 20일 열릴 ‘유럽 영화의 장래’라는 세미나에서 대한민국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을 주요 발표자로 초청, 스크린쿼터제에 대한 발표를 공식 요청했다. 1927년 영국에서 시작된 스크린쿼터제는, 한국을 통해 그 효용성이 세계적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경제 관료만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외면한 채 스크린쿼터제의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스크린쿼터제는 할리우드 영화의 시장 독과점을 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지난해 한국영화점유율이 처음으로 40%대에 들어섰다고 해서 우리 시장을 압박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독과점 행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의 눈부신 실적은 ‘친구’등 몇 편의 영화에 의존한 바 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관료들은 지난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시장점유율 40%가 될 때까지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러나 ‘40%’는 스크린쿼터제의 문화 경제적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정치적인 상징 수치였을 뿐이다. 설령 그 수치에 매달린다고 해도, “40%가 될 때까지”는 “40%대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 될 때까지”로 해석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우리는 고작 지난해만 40%를 넘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18일자 프랑스 권위지 르몽드는 ‘문화선진국’을 자부하는 프랑스가 한국에 대해 동등한 동지애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렇게 돌려서 표현했다.
“MPAA(미영화인협회)가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목표는 40년 전부터 프랑스가 시행해 왔고, 특히 유럽과 저 멀리 한국의 여러 동반자들에게 연결돼 있는 영화지원 장치를 분쇄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외교적인 성과’가 국위 선양에 기여한 ‘경제적인 효과’를 경제관료들은 계산해 본 적이 있는가? 또 영화를 문화 외교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족의 문화 정체성을 놓고 섣부른 도박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성근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이사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