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나래 편 '창작의 업'…문단 밀알로 거듭나길"

  • 입력 2002년 1월 22일 18시 38분


“41년간 작가 생활을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 이문열씨처럼 부자가 된 이도 있습니다. 세상에 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 벌어먹는 일이 작가외에 몇이나 있겠습니까.” (소설가 유현종·66년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안팎으로 문학 여건이 좋지 않아 불리한 때에 문학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삶과 문학에 대한 ‘진정성’만 확보한다면 어떤 시대에도 문학은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믿음만 굳게 지키고 있는다면 문학정신을 해하려는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소설가 이문열·79년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

축복처럼 내린 함박눈이 북악(北岳)과 인왕(仁王) 산에 설화(雪花)를 터뜨린 21일 오후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02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은 문단 선후배들이 문학의 위기를 걱정하고 문학인들의 열정을 재확인하는 의미 깊은 자리였다.

수상자 8명의 장도를 격려하려고 20여명의 심사위원과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모임인 문학동우회(文學東友會) 소속 작가 등 100여명이 눈길을 헤치고 달려왔다.

선배들이 특히 당부한 것은 당장의 끼니가 없어도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던 꼬장꼬장한 선비와 같은 작가적 자존심을 지키는 자세였다.

유현종씨는 특히 “세상이 혼탁해 작가가 병드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병드니 사회가 혼탁해진다는 것을 인식해 달라”고 주문했다.

빙부상 발인을 마치고 곧바로 달려와 신춘문예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 김학준(金學俊) 동아일보 사장은 축사에서 중고등학교 때 문학청년의 꿈을 꿨었다면서 한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문인의 역할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사회가 혼돈스러울 때 사람들은 문학과 함께 분노하고 위안과 희망을 얻으며 마음의 중심을 찾았습니다. 구 소련 작가 솔제니친의 말처럼 한 나라 국민이 훌륭한 문학인을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정부(政府)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고시보다 수 십배 어렵다는 신춘문예의 관문을 뚫고 고통스런 창작의 길을 자청한 수상자들은 많은 선배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문학에 대한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갈등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불화하는 사람들을 서로 묶을 수 있는 작품으로 사회에 기여하겠습니다.” (중편소설 서문경)

“이제부터 본격적인 습작 기간이 시작됐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 김중일)

“우주나 유전자 같은 첨단의 대상과도 만날 수 있는 전통 가락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시조 최길하)

“아이처럼 맑은 마음의 눈으로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아동문학 하인혜)

“지금의 초심으로 평생 창작에 정진하겠습니다.” (희곡 김현철)

“죽는 날까지 오직 창작의 한 길만을 가겠습니다.” (시나리오 나웅권)

“평생 우리 문학을 연구하라는 격려의 계기로 삼겠습니다.”(문학평론 안미영)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 (영화평론 이재현)

시상식이 끝나자 거세게 불던 북악의 한풍은 어느새 잦아들었고, 짙은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맑은 저녁 햇살이 빙하기처럼 꽁꽁 헌 회색 도시를 천천히 녹이고 있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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