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월스트리트,'千金벽'뒤 탐욕 '월스트리트 제국'

  • 입력 2002년 1월 25일 18시 27분


◇ 월스트리트 제국/존 스틸 고든 지음 /448쪽 2만8000원 참솔

월스트리트는 뉴욕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뒷골목이었다. 이 곳이 어떻게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게 이 책의 목적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없는 350년 미국 주식 시장의 역사를 보여 주는 통사이다.

월스트리트는 금과 은, 조가비나 염주알 같은 것이 화폐로 쓰이던 시절,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과 영국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담장(wall)에서 출발했다. 이곳에 자본이 모여들어 거래가 활발해지자 증권 브로커들은 자신들의 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월스트리트 무화과 나무 아래 모여 게임의 룰(버튼우드 협정)을 정한다. 이후 운하와 철도의 건설, 전쟁을 거치면서 엄청난 자본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가 처음부터 선진적인 자본시장은 아니었다. 사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은 문제가 많은 나라였다. 외채를 떼 먹기 일쑤였고 기업의 분식 회계와 부실 경영이 얼마나 뿌리 깊었던지 영국 투자자들은 아예 미국 기업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주식시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가 조작과 사기, 협잡이 당연시됐고, 3달러를 들여 설립한 회사의 주식을 팔아 150만달러를 챙기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더글러스 페어뱅크=무성영화 시대 최고 스타. 그는 할리우드의 명성에 힘입어 증권브로커로 변신했다.

월스트리트 역사에 남는 희대의 ‘작전’ 사례가 두 개 있다.

첫번째가 이리(Erie)철도 인수 전쟁이다. 영국과의 전쟁 때 증기선으로 돈을 번 반더빌트가 사업 확장을 위해 미국 동부를 관통하는 철도에 눈을 돌렸다. 여기에 다니엘 드루 역시 이리 철도를 인수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반더빌트의 막대한 재산 때문에 손쉽게 끝날 줄 알았던 인수작전은 드루측이 신주 발행을 남발하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주식을 찍어내는 인쇄기가 망가질 정도’로 많은 주식이 쏟아져 나왔고, 부정하게 돈을 챙긴 드루는 뉴욕에서 뉴저지로 줄행랑을 쳤다. 이후 진행과정은 사법부와 행정부까지 동원된 추잡함의 극치였다.

이 싸움은 두사람의 극적인 타협으로 마무리됐지만 정치인들은 내심 거액의 뇌물을 받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고 혀를 찼다.

첫번째가 이리(Erie)호 철도 인수전쟁이다. 영국과의 전쟁때 증기선으로 돈을 번 반더빌트는 사업확장을 위해 미국 동부를 관통하는 철도에 눈을 돌리면서 철도회사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이미 경영권을 갖고있던 다니엘 드루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주식을 찍어내는 인쇄기가 망가질 정도’로 많은 주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당초 막대한 재산가인 반더빌트의 승리로 끝날 줄 알았던 인수전쟁은 드루의 역공으로 암초에 부딪힌 것. 반더빌트는 판사를 매수해 드루의 신주발행 자체를 불법화시킨 뒤 드루를 체포하도록 했다. 미리 정보를 입수한 드루는 발행한 주식을 팔아 막대한 돈을 챙긴 뒤 뉴욕에서 뉴저지로 줄행랑을 쳤다. 두 사람 싸움은 결국 반더빌트가 드루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막을 내렸지만 당시 사건은 월스트리트가 사기와 음모의 추잡한 현장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두번째는 대통령까지 사기에 끌어들인 금투기 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의 주인공은 당시 월스트리트의 3대 큰손의 하나였던 제이 굴드였다. 19세기 중반까지 금본위 제도를 채택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정부가 갖고 있는 금의 양은 한계가 있는 반면, 금을 사겠다는 수요는 무제한으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돈있는 사람이 금을 마음껏 사서 가격을 움직이는 것이다. 제이 굴드는 한편으로는 금을 매입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랜트 대통령에게 접근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은 정당한 것이므로 정부가 가격을 조작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굴드의 작전대로 금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랜트 대통령이 뒤늦게 정신을 차려 시장에 개입해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월스트리트가 이런 난장판을 딛고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을 사랑한 탁월한 인물과 스스로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자정 능력 덕분이었다. J P 모건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경제 위기로 줄어든 금을 보충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유럽에 처음으로 내다 판 것이 모건이었고,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하면 되죠?’라는 정책 자문을 처음으로 던졌던 월스트리트 인물도 그였다. 중앙은행마저 없었던 때 모건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월스트리트는 때때로 닥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도의 보완은 증권 중개인 전체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앞서 언급했듯 초창기 월스트리트는 소규모 시장이었고, 게임의 공정성은 이웃과 즐기는 포커게임같이 체면과 공동체의 질타에 의존했다. 그러나 판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시장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 공정한 룰을 원했던 증권 중개인들이 투기 세력을 잠재울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나갔고, 이런 제도를 바탕으로 월스트리트는 미국 경제가 산업혁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본을 중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책을 읽어보면 월스트리트 역시 기업회계의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기까지 사기와 협잡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전으로 얼룩졌던 지난해 우리 주식시장에 비춰보면 역설적으로 ‘월스트리트도 그랬다는데…’하는 위안도 생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일까? 이번에 ‘엔론사태’를 계기로 월스트리트는 다시 위기에 빠졌다. USA투데이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월스트리트가 1980년대 규제완화와 자유화, 시장화의 이름 아래 다시 ‘탐욕이 아름다운 시대’가 됐다고 분석한다. 1990년대 인터넷 거품은 ‘탐욕의 극치’였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엔론사태는 탐욕의 시대에 곪고 있던 병이 그 시대가 끝날 즈음 나타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엔론이 지난 4년간 과다 계상한 수익만도 5억9100만달러에 이르는 데다, 아서 앤더슨을 포함한 ‘빅 5’ 회계기관이 대부분 분식회계에 연루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월스트리트에 공인회계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0년대이다. 기업회계사들은 경영자 편이어서 이들이 만든 장부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공인회계사를 탄생시켰는데, 120년이 지나도 엔론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막지 못했다. 유난히 ‘투명성’을 강조하던 월스트리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저자는 현재 월스트리트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금융자본의 전지구화 현상과도 관련이 크다고 지적한다. 월스트리트가 심판이 없는 ‘탐욕의 게임’을 최근 20년 동안 진행해 왔기 때문에 ‘심판없는 게임은 결국 판이 깨진다’는 논리에 따라 전 지구적 금융감독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월스트리트가 이번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주목된다. 원제 The Great Game(1999년). 강남규 옮김

이종우(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