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마다 경북 구미시 원평동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만나 상담해주는 독일인 신부 헤르베르트 보타와(한국명 허창수·61). 지난 일요일에도 10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그를 찾아와 상담을 하고 노동법을 공부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곳에 오면 ‘마음의 평화’가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30세 때인 1971년 독일 뮌헨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10월 16일, 유신헌법이 공포되기 하루 전에 한국에 온 그는 지난 30년 동안 살면서 한국사회의 인권 신장을 위해 부단히 애썼다.
“이제 국가보안법을 공론화할 정도가 됐으니 한국의 인권상황이 상당히 좋아졌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좀 나아졌다고 외국인 근로자를 노예 부리듯 하는 것은 유치하지 않습니까.”
가톨릭근로자센터가 지난해 1년 동안 외국인 근로자들을 상담한 결과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미적용 사례가 280여건으로 2000년보다 배가량 늘었다.
91년부터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는 보타와 신부는 동반자적 노사관계 정립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자본주의의 도덕성과 비도덕성’ 등 10여권의 책을 펴냈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터전으로 자리 잡은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도 그가 혼자 뛰다시피 하며 모은 10억원으로 2000년 11월 마련한 것.
“외국인 근로자를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부려먹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기업가와 근로자는 동반자 관계로 함께 가는 것이 진실입니다. 이 땅에 묻힐 때까지 그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저는 꿈꾸고 있습니다.”
74년 동아일보가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백지광고를 냈을 때 1달러를 동아일보에 보내기도 한 그는 당시 한국의 인권상황을 잊지 않기 위해 아직도 그때의 신문을 보관하고 있다.
구미〓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