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이 걱정스럽고 착잡한 감정을 수반하는 이유는 잘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오후에 이어지는 아름다운 일몰처럼 삶의 후반부는 가장 지혜롭고 황홀한 시간이다. 그러나 모든 날이 아름다운 일몰을 보여주지 않듯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인생의 후반부를 보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복한 퇴직 생활을 원한다면 우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이것의 의미는 돈을 모아 놓으라는 것 이상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대개의 경우 퇴직 후 부부가 세계일주 여행이라도 떠나려고 모아둔 적금을 털어 막내딸 시집보내는 데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만일 경제사정이 넉넉하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소식(小食)과 절제라는 새로운 습관을 통해 돈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현명하다. 안전 장치를 더 갖춤으로써 안도하려는 대신 묶고 있던 것을 하나씩 벗어냄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좋다. 노욕(老欲)에 지지 말라는 뜻이다.
둘째, 하고 싶은 하나의 일에 시간을 흠뻑 써라. 퇴직 이후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때까지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혹은 알더라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인생을 낭비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의미와 보람을 건져올 곳이 없다. 쓸데없이 과거를 자랑함으로써 과거 속으로 숨지 마라. 처량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또한 부부가 함께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 서로 자신의 일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늘 학생으로 남아라. 우리는 배움을 포기할 때 갑자기 폭삭 늙는다.
셋째, 마음이 기뻐하는 곳으로 가라. 건강은 기쁨으로부터 온다. 따뜻함과 관용은 장년 최고의 미덕이다. 그러나 요청받지 않은 충고는 하지 마라. 충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천을 통해 존경받는 어른이 되라. 일상과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가까이하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늘 감사하라. 그리고 웃어라. 늘 웃고 또 웃어라.
넷째, 남김없이 쓰고 가라. 죽을 때 아직도 남기고 가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지극히 아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는 마라. 그들과 경쟁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함께 즐거워하라는 뜻이다. 또한 가장 따뜻한 오후와 아름다운 일몰을 즐기라는 뜻이다.
삶을 탐닉하라. 인생은 살기 위해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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