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둘 늦깍이 한의사 김현동씨 "난치병 고치는데 인생 바칠터"

  • 입력 2002년 1월 29일 13시 45분


“한의학으로 난치병을 고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겠습니다. 그래야 후손에게 뭔가 남겨줄 수 있지 않겠어요?”

나이 마흔둘. 경희대 한의대 95학번. 2월이면 20대 동기생들과 함께 한의사로 첫 발을 내딛게 될 김현동(金顯東)씨의 포부는 비장하다.

되돌아보면 배움의 길을 다시 걷겠다는 8년 전의 결정은 옳았다. 그의 육신과 가족은 고달팠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꿈과 일을 얻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공대 79학번인 그는 10·26 사태와 신군부의 정권 찬탈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시위와 노동 현장을 전전했다. 대입학원 수학강사라는 첫 직업을 얻은 것은 10년 만인 89년 간신히 졸업을 한 뒤였다.

“가장으로서 등 붙일 집 한 채만 마련하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생각이었어요. 그러던 중 갈수록 세계화돼 가던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94년 봄부터 반년 남짓 공부한 끝에 특차로 합격했지만 이후의 생활은 “강의실과 실습장과 도서관을 오가는 고된 ‘고3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해 1000만원가량인 학비, 네 딸 및 부인을 부양할 생활비는 과외를 해 벌거나 노동운동 시절 인연을 맺은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90년대 이후 김씨처럼 뒤늦게 한의사로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해마다 입시철이면 대기업 간부나 의사, 교육자였던 늦깎이 한의학도가 화제에 오른다.

경희대 한의대의 경우 재학생 807명 가운데 152명이 30대 이상의 연령이다. 5명 중 1명가량이 나이 서른을 넘긴 것. 다른 대학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의학에 대한 열정 없이 오로지 안정적인 직업만 바라보고 뛰어들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는 것이 김씨의 조언이다.

김씨는 “중년이 감당하기엔 워낙 공부량이 많다”며 “그만한 노력을 이미 걸어온 길에 쏟아부으면 노후대책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저 이 늙은 학생이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도와준 동기생과 교수님께 감사합니다.”

김씨가 기사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한 말이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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