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러시아 음악을 찾아서]거장은 음악속에 살아있다

  • 입력 2002년 1월 29일 18시 04분


피아노의 사랑스러운 주제가 단아하게 흐른다. 바이올린이 수줍음을 가득 안고 흐느끼는 듯 하더니 강렬하게 고조됐다. 타계 20주기를 맞은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이 피아니스트인 딸 니나 코간과 협연한 그리그의 소나타 2번 2악장이다.

10일, 니나 코간의 모스크바 집 거실에 이 유려한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레오니드가 죽기 2년 전 부녀는 이 음반을 녹음했다.

“아버지는 대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 절친했어요. 한 아파트에 살고 있던 쇼스타코비치는 저녁이면 LP 음반을 들고 찾아오곤 했지요. 두 분은 창문을 모두 닫고 스탈린 시대에 금지되었던 곡을 듣곤 했습니다.”

니나 코간은 담담하게 어린 날의 추억을 떠올렸다.

20세기 세계 음악계의 판도는 러시아 출신들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소비에트 연방은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예술가를 육성했다. 1958년 시작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가 그 대표적인 예. 그러나 당국은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내세우며 예술인들을 억압하기도 했다. 음악인들은 자유를 갈구하며 조국을 떠나기도 했고 이상과 현실 사이를 고뇌하며 예술혼을 이어가기도 했다. 조국에 남아 자신의 인민들을 위해 ‘복무’했던 위대한 음악가들은 지금 한 자리에 다시 모여있다.

니나 코간의 옆집에 사는 피아니스트 미하일 페투호프의 안내로 찾은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역. 고골리, 체호프와 같은 대문호를 위시해서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아를 움직였던 예술가들의 묘 수천 기가 정연하게 놓여있다. 1950년대 체계적인 문화정책을 입안했던 문화성 장관 에카테리나 푸르체바의 비석 또한 예술가들과 함께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은둔의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앙 쉬트코베츠키의 위엄에 찬 묘비를 지나 윗쪽으로 각진 외모만큼이나 반듯한 레오니드 코간의 묘가 나타났다. 가끔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휘황한 바람만이 불어올 뿐 눈 덮인 그의 마지막 자취는 말이 없다. 쇼스타코비치, 오보린, 긴즈부르그, 스크리아빈, 쉬니트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그렇게도 흠모했던 음악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최고의 베이스 가수였던 살리아핀도 위풍당당하게 거기에 앉아있다.

바흐의 스페셜리스트였던 스승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묘 앞에서 성호를 긋는 제자 페투호프의 눈에는 끝내 이슬이 맺혔다.

“니콜라예바는 제2의 어머니이자 음악의 어머니입니다. ‘음악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들으면서 ‘가슴이 아프십니까?’ 라고 되물었지요. 제가 고개를 끄덕이면 ‘왜냐하면 그의 음악은 매우 인간적이니까요. 음악도 휴머니즘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1월 7일 네바강변에 위치한 20세기 러시아 최고의 지휘자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의 아파트. 국화 한다발을 들고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부인 아빌란다 여사를 만났다. 므라빈스키가 아꼈던 피아노의 건반을 눌렀다. 영롱한 소리가 이내 생전에 그가 가장 많이 연주했다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의 선율로 화하여 울렸다.

“남편은 모든 연주회 전에 반드시 교향곡의 전곡 스코어를 이 피아노로 연주했어요. 건강은 그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어요. 88년 1월 죽기 4일전까지 그의 책상에는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 악보가 놓여있었죠. 그리고는 ‘빨리 이 곡을 리허설 해야 하는 데….’를 반복했죠.”

건강이 좋지 않아 같이 갈 수 없다며 다음에 가자는 미망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로 1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보고슬로브스카야 공동묘지로 향했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자작나무 숲에 고독히 서있는 묘를 찾아 헌화했다.

‘정치 이외의 모든 방면에 해박했다’는 지휘자 므라빈스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가우크와 말코 밑에서 함께 수학했던 일리아 무신은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을 맡자 대립할 수 없다면서 음악원에서 후배들을 길러냈다. 그 결과 게르기예프, 테미르카노프, 시모노프 등 현재 러시아를 대표하는 지휘자가 나올 수 있었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방송작가 poetandlov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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