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인터뷰]이병우…기타로 그림 그리는 '음의 미술가'

  • 입력 2002년 1월 29일 18시 36분


①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 음악감독 ② 한국에서 ‘아란후에즈 협주곡’을 가장 잘 치는, 클래식 기타의 독보적 존재 ③ 80년대 후반 많은 마니아를 끌어모은 인디밴드 ‘어떤날’의 기타리스트.

누구? 이 셋은 사실 한 사람이다. ‘멀티 기타리스트’를 넘어 ‘멀티 뮤지션’으로 발돋움한 이병우(37)가 바로 그다.

#1 어린 시절

“열한살 때 클래식 기타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중학교때는 자연스럽게 일렉트릭 기타를 자연히 잡게 됐죠.”

친구들 앞에서 화려한 헤비메탈 연주를 펼치면서도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명동 ‘대한음악사’에서 클래식 소품 악보를 구해 ‘고독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때 무릎에 이상이 생겨 학교를 1년 동안 쉬면서 더욱 음악과 가까워졌다. 록에서부터 장대한 교향곡도 밤낮없이 들었다.

#2 '어떤날'

“지금 베이시스트로 유명한 조동익 형이 밴드를 하자고 하더군요. 동익이 형은 베이스를 맡았죠.”

들국화 1집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내놓아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시절이었다. 1986년 1집, 3년 뒤 2집이 나왔다. 절제속에 치밀한 기법이 두드러진 두 장의 ‘어떤날’ 음반은 한국 인디음악 초창기의 걸작으로 끊임없이 거론된다.

“인터넷 옥션 등에서 판을 찾는 사람이 많다구요? 처음 들었어요.”

#3 유학

오직 기타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 1989년 독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훌쩍 빈으로 떠났다. 빈국립음대에서 기악을 전공해 보란듯이 수석으로 졸업한 뒤 다시 미국 피바디 음대에 입학했다.

“지도교수 줄리언 그레이가 미국에서 클래식 연주가로 남지 않겠느냐고 제의하시더군요. 그러나 ‘한국에서도 이런 음악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돌아왔다. LG아트센터에서 귀국공연 ‘내가 그린 기타 그림’을 열었고, 코리안심포니 유라시안필하모니 KBS교향악단과 협연했다.

#4 마리이야기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보고 몇 가지 주제를 생각하죠. 그 다음에 그림이 나올 때마다 맞는 음악을 구체화시킵니다. 영화작업에서 음악은 맨 나중쪽이라 감독의 주문이 많아요.”

96년 ‘세 친구’ 지난해 ‘스물넷’에서도 그는 환상적인 선율의 매력을 마음껏 과시했다.

“‘마리 이야기’가 제 음악과 가장 잘 들어맞는 것 같다구요? 저로서도 잔잔하면서도 환상적인 화면에서 영감을 떠올리기 무척 쉬웠습니다.”

#5 목표?

크로스오버란 의미없는 작업이 아닐까. 이쪽 저쪽의 특징을 뽑아서 개성없이 어중간한 음악만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떠보았다. 의외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것은 양쪽의 기법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클래식 연주가로 성장한 음악가가 대중음악의 껍데기만 흉내내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많았죠.”

그는 양쪽의 기법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자기’라고 내세우지도 않았다.

“목표? 없어요. 어릴때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함께 있으니, 어디든지 음악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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