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회사에 다니는 김모씨(32·여)는 지난해 12월 인터넷 신문을 보다 깜짝 놀랐다. 부산에서 활약하는 40대 여성 금고사장에 대한 기사를 무심코 클릭하던 중이었다. 서울 강남의 현대고등학교를 다닐 때 잘 따랐던, 늘 인상이 밝고 자신이 넘쳤던 그 선생님이 분명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선생님은 금고 사장이 돼 있었다.
“제자들에게 늘 다양한 인생 경험을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그 말이 씨가 됐네요.”
부산플러스금고의 박미향(朴美響·44·사진)사장. 18년6개월 동안의 교직생활을 접고 지난해부터 금고 경영이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인수한 부산동방금고의 대주주로서 경영을 옆에서 지켜보다 11월엔 아예 경영 전면에 나섰다.
박 사장은 “돈 공부를 언제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이 영 못마땅한 듯 했다. 85년 현대고에 부임했을 때부터 사실 동생의 사업을 도우며 자기만의 사업을 꿈꿔왔다는 즉답이 돌아왔다.
그러다 99년 11월 온라인상에서 어음거래를 중개하는 피놋(pinot.com)을 설립하면서 금고업과 인연을 맺게됐다. 어음거래를 중개하다 보니 ‘사양산업’인줄 알았던 금고업에도 살길이 보였던 것. 마침 경영부실로 금융감독원의 경영개선조치를 받고 있던 부산 동방금고가 매물로 나오자 박 사장은 덥석 인수해버렸다. 본점과 지점 두 군데에서 1400억원대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회사.
박 사장은 사장 취임 직후 69명의 임직원들을 정리하기는커녕 2명의 투자전문가를 임원으로 채용하는 등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로비스캔들을 일으킨 서울의 한 금고와 똑같은 회사 아니냐는 오해를 받자 상호도 ‘플러스’로 바꿔버렸다. 최대한 굴려 상반기에 흑자로 돌아서는 게 당면 목표.
“대학에서 가정학을 배우겠다는 저에게 컴퓨터학을 권하신 분이 선생님입니다. 그게 저의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이화여대 임지영 교수(컴퓨터학)는 선생님의 변신을 ‘이유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털털한 성격과 패기가 ‘사장님’과도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그런 박사장도 여사장이란 한계를 떨칠 수 없어 고민 중이다. 바로 술자리와 학연, 지연 등 남성 위주의 사업환경이 만들어내는 ‘연줄’이 늘 걸림돌. 박사장은 “갓 사장에 입문,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형편인데도 인맥관리 때문에 골프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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