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객실의 '외도'…전시, 파티 등 문화공간 탈바꿈

  • 입력 2002년 1월 31일 13시 50분


서울 리츠칼튼 호텔
서울 리츠칼튼 호텔
벽 뒤에 걸려 있는 피카소의 진품 판화가 눈에 들어온다. 재즈음악이 고급 음향기기인 ‘뱅 앤드 올프슨’의 스피커를 타고 감미롭게 방안을 휘감는다. ‘Would you marry me?(나와 결혼해줄래?)’라는 메시지가 초콜릿 크림으로 적힌 케이크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진 샴페인 한 병이 예쁜 잔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남자는 분홍색 노랑색 장미가 섞여 있는 아담한 꽃다발을 여자에게 건네며 청혼한다.

서울 리츠칼튼 호텔은 최근 최고급 객실인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을 ‘프로포즈의 장’으로 꾸며 원하는 사람에게 3시간 동안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화려한 청혼’을 꿈꾸는 결혼적령기의 남녀 외에도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다시금 부부간의 사랑을 확인하고픈 중장년층 고객들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상 대여료는 ‘1박에 550만원’이지만 프로포즈 공간으로 이용할 때 객실료는 1시간에 15만원.

런던의 그레이트 이스턴 호텔

‘잠자는 곳’으로만 여겨지던 호텔 객실이 안온한 분위기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사교, 파티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모임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로열 스위트룸에서는 명품 브랜드 ‘아이그너’의 패션쇼가 열렸다. ‘초대받은 몇 십명’만이 옷에 대한 품평을 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인데 굳이 큰 연회장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아이그너 측의 설명. 차를 마시며 푹신한 소파에 앉아 남산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은 번잡한 패션쇼장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풍경이다.

숲과 맞닿은 언덕 위에 별장 개념의 ‘빌라’가 있는 서울 워커힐 호텔의 경우, 동호인 모임이나 외국계 기업의 워크숍이 자주 열린다. 요리를 직접 하거나 술을 사서 들여올 수는 없고 룸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콘도미니엄처럼 사용할 수 있다.

각 비즈니스 호텔 영업부는 고객들의 변화에 맞춰 ‘모어 댄 스테이(More than Stay)’로 객실용도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흰색 면포를 두른 침대와 쿠션, TV와 옷장이 갖춰졌던 ‘침실’ 개념은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전시관, 파티장, 사교공간, 예술적 심미적 자극을 받는 공간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호텔 관계자들은 “집과 가장 근접한 컨셉트를 갖춘 공간에서 안식과 휴양, 문화적인 자극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요구가 많아지는 것은 세계적인 조류이기도 하다”고 분석한다.

스페인의 아츠 바르셀로나 호텔

식당, 바 등 식음료 업장의 매출 비중이 객실 매출과 버금갈 정도로 높은 한국의 호텔과 달리 ‘숙박’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외국호텔들은 일찌감치 객실의 ‘용도변경’에 정성을 쏟았다.

영국 런던의 그레이트 이스턴호텔은 2년 전부터 호텔 내에 있는 13개 객실에 전문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 삿포로에서 촬영된 벚꽃 사진, 존 F 케네디, 제임스 딘, 오드리 헵번, 마틴 루터 킹 등의 모습이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담긴 사진 등. 액자에 담아 벽에 거는 것이 아니라 벽지나 침대 시트, 면포에 직접 영상물을 인쇄해 놓았다.

이 호텔의 홍보담당인 리즈 그로건은 “세계사적으로 아이콘이 될 만한 사람, 천편일률적인 전시장의 틀을 벗어나 사진작품을 체험하는 ‘의외의 경험’에 고객들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호텔은 여름성수기인 6월 16일부터 8월 27일까지 1950년 이후 촬영된 포토저널리즘 작품들을 전시하고 경매도 진행할 예정이다.

스페인의 아츠 바르셀로나 호텔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10층에 있는 스위트룸을 그림 전시관으로 바꾼다. ‘오후의 아트 투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림을 그린 화가들과 직접 만나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작품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뉴욕 맨해튼의 딜런 호텔

스위트룸 자체의 가구와 조명시설도 핸드메이드로 제작된 것이라 ‘전시관’ 분위기가 물씬하다. 이 호텔은 객실 외에도 로비의 벽면 등에 모두 1000여점의 미술작품이 걸려 있어 ‘예술 호텔’로 유명하다.

중세유럽의 연금술사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도록 방의 ‘컨셉트’를 바꿔놓은 곳도 있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딜런호텔은 고딕양식으로 꾸며진 ‘연금술의 방(Alchemy Suite)’을 운영하고 있다. 붉은색 조명이 불투명 흰색으로 칠해진 천장과 기둥에 반사된 이 방의 모습은 화학작용으로 순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옛 연금술사의 신비스러운 작업실을 연상시킨다. 창문은 중세 성당에서 볼 수 있었던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졌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국내외 객실변신호텔▼

호텔전화인터넷(www)특색
국내리츠칼튼02-3451-8000ritzcarlton.com으로 접속스위트룸에서 프로포즈
워커힐02-455-5000walkerhill.co.kr‘빌라’에서 사교파티
그랜드하얏트02-797-1234seoul.hyatt.com스위트룸의 소규모 사교모임
국외그레이트 이스턴44(영국)-20-7618-5000great-eastern-hotel.co.uk유명 사진작가들의 작품 전시
아츠 바르셀로나34(스페인)-93-221-1000ritzcarlton.com으로 접속스위트룸이 미술전시관으로 바뀜
딜런1(미국)-212-338-0500dylanhotel.com고딕양식의 인테리어
이로쿠아뉴욕1(미국)-212-840-3080iroquoisny.com제임스 딘이 묵었던 스위트룸을 그대로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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