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 책]서양이론으로 보니 더 멋진 우리 그림-건축

  • 입력 2002년 2월 1일 17시 16분


□몬드리안이 조선의 보자기를 본다면

□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짓다

□우리 옛 건축과 서양건축의 만남

새해 초에 뉴질랜드의 풍경을 담은 그림 전람회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화가 정영남 화백이 그곳에 직접 가서 그려온 그림들로, 이국적인 풍경을 한국화의 기법으로 소화해 낸 작품들이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검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요트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면양들, 그리고 잘 정돈된 서양풍의 시가지가 수묵 담채를 통하여 화선지 위에서 우아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맑고 청명한 물감이 가져다 주는 소쇄미(瀟灑美), 공간의 여백과 선의 유연함에서 드러나는 공활미(空豁美), 그리고 격의없이 자유로운 붓의 움직임에서 풍겨나는 해학미(諧謔美)는 한국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의식을 담고 있었다. 외국의 경치에는 으레 유화나 수채화가 어울릴 것으로 여겨왔던 나의 빈곤한 상상력이 못내 부끄러웠다. 같이 구경하던 외국 관람객들 역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찌 보면 나의 세대는 반 장님, 반 귀머거리 세대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가 배워온 것은 서양 미술과 음악이었지, 한국의 미술이나 음악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이 없다. 우리 자신의 그림과 가락에 담긴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것만 숭상해 온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보다 조금 뒤의 세대에는 나와 같은 반 장님의 눈을열어 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몬드리안이 조선의 보자기를 본다면’(열림원, 2000), ‘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짓다’(서해문집, 2000), ‘우리 옛 건축과 서양건축의 만남’(대원사, 2000)의 저자들은 모두 60년대생 예술사가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서양으로 건너가 그곳의 미술과 건축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우리 그림과 건축에 담긴 멋을 당당하고도 세련된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다.

몬드리안은 기하학적 추상화로 현대 미술사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화가지만, 이름 없는 조선의 여인들이 지어낸 조각보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 비정형화된 추상미를 담고 있다. 밀로의 ‘비너스’는 완벽한 이상주의를 표현한 차가운 미인이지만, 윤재공 가(家)의 ‘미인도’는 여성적인 화사함과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여인을 그리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은 엄격하게 이분법적 대칭을 추구한 반면, 소수서원은 자연의 지세를 적극 활용하여 비대칭적이면서도 산만하지 않은 내재적 질서를 구현하고 있다.

꼭 우리 것만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 것이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각자에게 간직된 아름다움을 편견 없이 인정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융회하여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해낼 때 우리 문화는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이환(고려대 교수·동양철학) kule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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