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은 음식과 더불어 삶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하면 개체로서의 삶이 유지될 수 없고, 성이 없다면 세대로 이어지는 인류라는 집단의 존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둘에는 공통적으로 즐거움이 따른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보라. 얼마나 즐거운가? 만족스러운 성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음식에 대해 말하는 일에는 거리낌이 없지만, 성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우리의 경우는 특히 더하다. 유교적 금욕주의로 무장한 500년 조선왕조의 영향으로 종교적·문화적 차원에서 성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춘다고 해서, 그 성이 해결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억압 속에서 왜곡된다. 원조교제와 유흥업소 등으로 탈이 난 우리의 성문화가 바로 그 예이다.
작고하신 이병주 선생의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우리의 이중적인, 더 나아가 위선적이기까지 한 성문화에 대한 반항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항인 이유는 일종의 고고학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고고학이란 이전의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눈앞에 보이는 현재의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는 지식이다. 그 고고학을 통해 우리는 ‘지금·여기’의 문화가 절대적인 아닌 것임을 이해하고 또 반성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선 저자는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며 과거의 성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적고 있다. 여기까지는 일간지 주필을 지낸 저널리스트 특유의 실증적인 자료조사가 빛을 발한다. 그것을 완숙한 삶이 배어 있는 소설가로서의 인간에 대한 통찰이 곳곳에서 뒤를 바치고 있다. 그 통찰은 성문화에 있어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머무르기 쉬운 여자의 성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대목에까지 나아간다. ‘결국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문화를 구성하는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90년대 들어 우리사회가 성과 욕망에 대해 보인 관심의 정도를 감안하면, 1987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이 책의 선구적 가치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재와 항거로만 상징되는 70, 80년대의 엄혹함 속에서 인간의 구체적 삶을 들여다본 희귀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면서 추가된 다양한 도판은 그 자체가 세계 성문화의 뛰어난 백과사전적 자료집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외설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인용처럼 “음심(淫心)을 품고 읽는 자에게는 음서(淫書)가 될 것이며, 성심(聖心)을 가진 자에게는 성스런 책이 될 것”이다.
인간은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체가 잘 조화를 이룬, 즉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성을 모호한 육체의 어둠 속에만 처박아 두지 않고, 밝은 햇살 아래로 이끌어내 영혼의 깊이를 읽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첫걸음이다. ‘호모 에로티쿠스’의 맛있고도 즐거운 삶 말이다. ‘우리의 성은 그런 점에서 당당한 기쁨이어야 한다.’
혹시 이 책에서 상대적으로 한국의 성에 대한 언급이 적은 것이 아쉽다면, 우선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시아스 심의 ‘심미주의자’를 읽어보기 바란다. 이병주 선생의 선구자적 정신은 그렇게 한 젊은 소설가에게서 문학적 결실을 얻고 있다.
박철화(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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