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이재웅 사장은 재단 기금 30억원 중 24억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거금을 출연했다.
사연은 프랑스 파리에서 이 사장과 박건희씨가 만났던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한 이 사장과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박건희씨는 유학생 신분으로 파리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들은 서울 영동고 동기동창이었지만 문과 이과라서 이름만 아는 정도였다.
그 후 평소 예술에 관심이 있던 이 사장이 박건희씨와 자주 만나 예술을 얘기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박건희씨는 이 사장을 통해 인터넷을 알게 됐다. 예술과 인터넷의 만남이었다. 이들은 이 만남을 계기로 무언가 구체적인 일을 하려는 꿈을 키워나갔다.
이들은 1994년 말 함께 귀국해 석달 뒤 다음커뮤니케이션을 공동 창업했다. 당시 다음의 첫 서비스는 사이버갤러리였다.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한국패션넷 등을 기획했고 그해 9월엔 광주비엔날레를 인터넷으로 24시간 생중계하기도 했다. 사진작가에서 인터넷 예술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던 박건희씨는 그러나 10월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아홉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후 이 사장은 사업 방향을 e메일쪽으로 바꿨다.
1년 뒤 고인의 사진 유작전 ‘영원히 닫힌 공간에서’가 열렸지만 이사장은 빚을 진 것처럼 미안했다. 고민하던 이 사장은 2000년 유족과 함께 문화재단을 설립하기로 하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 24억원을 마련했다. 또 다른 공동창업자인 다음의 이택경 이사도 6억원을 출연했고 유족들은 박건희씨의 유작을 기증했다.
재단 측은 박건희씨의 스승이었던 사진작가 구본창 교수를 재단이사장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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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교수가 90년대 초 중앙대에서 사진을 강의할 때 박건희씨는 청강생이었다. 구 교수는 “박건희는 재주가 많은 예비 사진작가였고 그래서 늘 눈여겨 보았다”고 회고했다.
박건희씨는 95년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사진작가를 세계에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고 그 첫 대상이 구 교수였다. 박건희씨의 죽음 이후 7년 만에 박건희 이재웅 구본창씨는 박건희문화재단을 통해 다시 만나 아름다운 우정에 소중한 사제지간의 인연을 보탠 것이다.
문화재단의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 사장은 “뒤늦게나마 사진에 대한 친구의 열정을 되새겨볼 수 있어 너무 기쁘다”면서 “사진예술이 활성화되고 나아가 사진과 멀티미디어를 연결하는 많은 시도들이 이뤄졌으면 좋겠고 그것이 바로 친구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벤처인들이 요절한 사진작가 친구를 위해 사진예술을 지원하는 문화재단을 만들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할 따름”이라면서 “건희의 뜻대로 한국의 사진예술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문화재단은 앞으로 매년 역량 있는 사진작가 2명을 선발해 각 2000만원 상당을 지원하게 된다. 또 사이버 사진 갤러리를 개설하고 사진 관련 학술대회도 연다. 02-3445-6374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