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개인 공간은 간소하다. 독신이나 수련회원, 손님들은 공동으로 방을 쓴다. 가족회원도 화장실 세탁기는 공동이용한다. 이곳은 서로의 존재에 무심한 채 지낼 수 있는 아파트적인 공간이 아니다. 함께 부딪히면서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워가야 하는 곳이다.
예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시온건물. 비탈에 세워진 까닭에 가파른 계단이 많다. 중앙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계단이 좌우로 갈라져 정면의 건물로 연결된다. 좌우 앞뒤로 둘러싸인 좁은 내부공간은 유럽식 외양과는 달리 폐쇄적인 중국식 집 구조를 연상시킨다.
정면은 예배실로 쓰였던 시온건물의 중심 공간인데 지금은 도서관이다. 예배실은 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시온건물 옆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옮겼다. 좌측으로는 침묵기도실이, 우측으로 티룸이 있다. 침묵기도실은 24시간 이용할 수 있지만 침묵으로만 기도할 수 있다. 침묵기도실에는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남아있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 먼저 상황을 알아챈 사람이 기도실을 나와야 한다.
침묵기도실이 철저히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을 위한 공간이라면 티룸은 사람과 사람의 사귐을 위한 공간이다. 여기서는 엄격한 남녀유별의 규율도 침묵의 규율도 없다.
야외에는 기도처가 2군데 있다. 겟세마네 기도처와 십자가의 기도처. 밤이 되면 여자들은 겟세마네 기도처, 남자들은 십자가의 기도처만 이용할 수 있다. 남녀가 함께 사는 수도원이니만큼 남녀 행동수칙은 엄격하다.
예수원의 설립자인 대천덕(미국명 리우벤 아처 토리·84) 성공회신부와 현재인 사모(미국명 제인 그레이 토리·80)는 65년 예수원 설립 이후 37년간 이곳을 지키며 살아왔다.
현재인 사모가 4일 80회 생일을 맞았다. 생일 축하미사에서 그녀는 “하나님이 광야에 마련해주신 식탁에서 기적적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대덕천 신부는 예수원을 세우려 속초와 강릉에서 제주도까지 외지고 경치 좋은 곳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조건은 물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을 만큼 세찬 개울이 있고, 도로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그러면서도 도로와 너무 가깝지 않고 그림을 그릴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수도원을 지을 만한 규모의 땅이 있는 곳. 가장 부합한 곳이 지금의 예수원 땅이었다. 부부는 이곳을 한국의 ‘애팔래치아 산맥’이라고 부르며 사랑했다. 대천덕 신부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에 살았던 중국 지난(濟南)의 가옥구조를 본 떠 시온건물을 지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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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인 사모는 안정된 가정을 이루어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싶었던 마음 약한 여자였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정돈된 저택에 살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서라고는 찾아 볼 길이 없는 초라한 야영생활을 하게 하심으로써 눈을 들어 나무와 꽃과 산과 별과 강에서 창조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하셨다.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과 깨끗한 침대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손님들은 맨바닥에서 자야 하고 간소한 음식을 먹어야 했다.”
회고는 이어졌다. “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 첫째 아들 벤은 4년 동안 예수원 세우는 일을 돕고 통신과정으로 고등학교 과목을 공부했다. 벤이 한국의 산 속에서 자랐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서인지 대학당국이 그를 받아들였다. 벤이 입학원서에 부모님이 ‘가난의 서약’을 했다고 적었기 때문에 학교측은 벤에게 장학금을 줬을 뿐만 아니라 용돈을 벌 일자리까지 구해줬다. 나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예수원에서 계획을 세워 하는 일들이나 예상치 않게 튀어나오는 일들로 꽉 차 버렸다.”
부부는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다녀왔다. 남편의 조상 대대로 내려온 버지니아주의 180년 된 낡은 저택을 수리하는데 주로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은 같은 방을 쓰면서도 각자 할 일이 바빠 대화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오후 4시반을 티타임으로 정해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부부간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태백〓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