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렸을 때에는 섣달 내내 설 준비를 하는 달이었다. 부풀리고 말린 산자에 튀밥을 붙이는 일까지 전부 집에서 했으니 웬만했겠는가. 이집 저집에서 떡을 찍어먹을 조청을 만드느라 엿을 달이는 냄새가 골목에 새어 나올 때쯤이면 장롱 속에는 형제들의 설빔이 하나 둘씩 쌓였다.
떡도 어쩌면 그렇게 많이 했는지. 아예 떡치는 날이 따로 있어 리어커에 불린 쌀을 싣고 방앗간으로 간 어머니는 해 저물녁에야 돌아오곤 했다. 설날 아침에 너무나 오랜만에 먹어보는 떡국 속의 고기국물에 속이 탈이 날 정도로 평소엔 지방질이라곤 입에 대볼 기회도 없이 살았으면서도 설날 음식을 만드는데는 그렇게 정성을 다했던 것 같다. 약과나 묵이나 식혜를 만드는 날, 집안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가 어릴 때는 한량없이 좋기만 하더니 지금은 그때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의 닳아진 어깨나 굽은 허리가 다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잊을 수 없는 것은 섣달 그믐날의 풍경이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잡기장을 들여다보며 이집저집 들락거리느라 바쁘셨다. 빌려온 낫도 돌려주고 빌려든 돈도 갚고 미처 못 전한 조의금이나 축의금 따위도 그날 챙겨 전했으며 폐일언하고 말빚까지도 다 갚고 다니셨다. 빚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그리하셨던 모양인데 그 아버지의 딸인 나도 빚지고는 못 견디는 성미이고 보면 물려받은 것 아닌가 싶다.
온종일 부엌에서 살았던 어머니는 섣달 그믐밤엔 또 어찌 하셨든가. 마루에 아침까지 꺼지지 않는 등을 달아놓으시고는 가마솥에 물을 데워 붉은 고무통에 찬물과 섞어 붓고 우리들을 손수 씻기셨는데 자그만치 여섯을 그리하고 나면 자정이 훨씬 넘어 있었다. 엄마는 안자? 물으면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새하야진단다, 하셨든가.
새벽에 깨어나면 머리맡에 내복과 양말과 새 옷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으며 이미 어머니는 또 부엌에 있었다. 내가 그렇게나 풍요롭게 느꼈던 어린 시절의 설날은 어머니의 등골을 빼먹는 날이었지 싶다. 하긴 어머니는 아직도 그러하다. 20여명이 넘는 가족들이 귀향을 하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힘이 드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낙이라면 낙이 되어버린 분에게 달리 어찌해볼 도리도 없는 일이니 그저 얼마나 힘이 드실까, 생각뿐이다. 그나 저나 설날이 다가오기 전에 나도 고마웠던 사람에겐 고마웠다고 말이라도 전해야겠다.
신경숙(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