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서울지국 밀착취재 '블룸버그 24시 정보전쟁 25시'

  • 입력 2002년 2월 14일 14시 00분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5층에 있는 블룸버그(Bloomberg) 서울지국 뉴스룸. 창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에는 어둑한 기운이 남아 있다. 뉴스룸은 적막하다. 기자들은 책상 위 네 개의 모니터를 바쁘게 훑으면서 재빠르게 자판을 두드린다. 전화통화를 하려는 사람은 헤드셋을 쓴다.

블룸버그는 경제정보를 수집해 자체 단말기로 서비스하는 멀티미디어 금융정보회사. 블룸버그 뉴스는 그 정보의 일부분이다. 블룸버그는 세계 84개 뉴스룸에서 수집한 정보를 16만7대의 단말기를 통해 미국 연방준비은행부터 홍콩의 개인투자자에게까지 24시간 공급한다.

블룸버그 서울 지국 뉴스룸의 평균 출근시간은 오전 7시반. 증권시장의 장이 시작되기 전은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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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각 기자 앞에는 모니터가 4개씩 있다. 서울이든 뉴욕이든 이스탄불이든 블룸버그 뉴스룸이라면 ‘네 개의 모니터’는 동일하게 주어진다. 자판도 ‘F2’ ‘F3’ ‘F8’ 대신 ‘Govt(정부)’ ‘Corp(기업)’ ‘Equity(주식)’ 등에 관련된 정보를 키를 한번 누르면 불러올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런 통일성 때문에 내일 당장 지구 반대편으로 발령받더라도 일하는 데 불편이 없다.

4개의 모니터 중 한 화면은 기자들 사이에 ‘work sheet’로 불리는 블룸버그 특유의 증권거래시세 차트. 차트에서 특정기업의 주가변동이 감지되면 기자들은 취재로 분주해진다.

조간신문을 뒤적이고, 모니터를 들여다 보며 여기저기로 전화를 거는 틈틈이 몇몇 사람들은 간식이 마련된 입구 쪽의 스낵 바를 오간다. 스낵 바는 네 대의 모니터나 자판과는 또다른 ‘블룸버그 환경’이다. 세계의 모든 블룸버그 사무실에는 먹을거리가 늘 풍성하게 갖춰져 있다. 서울지국에는 생수부터 콜라까지 23종의 음료수와 과일이 채워진 두 대의 대형 냉장고, 다이어트용의 시리얼바부터 컵라면까지 24종의 군것질거리가 갖추어진 스낵바와 커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카페인 없는 커피가 만들어지는 스위스제 커피머신이 있다. 오전 8시쯤이면 아침식사용의 김밥, 샌드위치가 배달된다.

스낵바와 냉장고는 회사가 늘 채워 놓고 누구에게나 무료다. 풍성한 스낵바와 커피머신은 기자나 직원들에게 밥 먹고 차 마시러 나가는 시간까지 아끼며 일에 몰두하도록 하는 ‘당근’이다.

스낵바 앞의 대형 어항은 블룸버그를 상징하는 또하나의 아이콘. 세계 어느 지국에든 반드시 비치되는 대형 어항과 스낵바를 보면 블룸버그 사람들은 ‘사무실에 왔다’고 느낀다.

“회의합시다.”

이유림 지국장의 한마디에 기자들이 일제히 원탁 가까이로 모여들었다. 여덟명의 서울지국 기자 중 유일한 외국인인 이안 킹도 한국어에 능통하지만, 회의는 철저히 영어로 진행된다. 오늘 회의에는 특별 방문객이 있다. 도쿄지국에서 근무하는 비디아 루트 아시아담당 편집국장이다.

오늘 어떤 기사를 쓸 것인지는 이미 전날 오후 5시경 이유림 지국장이 서울을 비롯한 동북아 지국을 관장하는 홍콩에 통보했다. 매일 아침 회의에서는 그날의 업무배분은 물론이고 한달 앞 등으로 예정된 기사가 차질없이 진행되는지를 체크한다.

1, 2월은 기업들의 4·4분기 실적발표로 바쁜 때. 블룸버그 뉴스는 ‘기업정보’를 최우선 순위로 다룬다. 이날도 매각협상에서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는 하이닉스를 제외하고는 실적 발표 취재가 논의됐다. 방문객인 루트 국장은 마치 줄곧 한국기업들을 취재해온 것처럼 발제 중간중간에 코멘트했다.

“물론 우리 기사는 4·4 분기 실적에 초점을 맞춰야 돼. 하지만 현대자동차 판매가 미국에서 그렇게 급신장하고 있다면 두 번째 문장쯤에….”

여성인 루트 국장은 뉴욕 사무소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파리 싱가포르를 거쳐 아시아 최대의 지국인 도쿄에서 아시아 편집국장역을 수행한다. 루트 국장이 책임지는 아시아의 지국은 13개.

루트 국장이 아시아지국의 뉴스룸을 통솔하는 방식은 ‘오프라인적’이다. 한달 평균 1주일씩 각 지국을 순회한다. 출장지에서도 기사를 실시간으로 편집하고 수시로 콘퍼런스콜, 비디오 콘퍼런스를 소집해 에디터나 기자들과 대화한다. 그러나 지국 방문에서 중요한 일과는 기자들과의 1 대 1 면담이다.

그가 어느 지국의 회의에 참석해서도 흐름을 꿰뚫을 수 있는 것은 평기자들과 직접적인 소통채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루트 국장 자신도 뉴욕 본사의 상관과 일주일에 몇차례씩 직무수행에 관해 e메일과 전화를 주고 받는다. 1년에 최소 여섯차례는 뉴욕 본사를 방문해 회사의 목표, 기업 가치 등에 대해 수혈받는다. 그는 이를 직접 부하직원들에게 전파하고 다닌다. 블룸버그 뉴스룸의 네트워크는 전 지구적이지만 최상층부에서 말단까지의 의사소통 거리는 짧다.

1월30일의 경우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을 출입하는 김세윤 기자가 콘퍼런스콜을 위해 헤드셋을 썼다. 매일 아침 10시15분경이면 김기자는 아시아 거시경제팀의 에디터, 팀원들과 다중통화를 한다.

서울 지국 기자들은 한 개 씩의 팀에 속해 있다. 아시아 거시경제팀의 경우 팀 리더는 도쿄에, 에디터는 홍콩 싱가포르 시드니에 있다. 한국 관련 아이디어는 싱가포르나 일본 기자들도 낸다. 다국적 팀의 강점은 자료와 아이디어를 모아 일국 경제의 경계를 넘어서는 큰 그림의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

하이닉스를 취재하는 기자는 미국의 마이크론사 담당기자와 상시 소통채널을 갖고 있다. 한국의 김용덕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이 “한국 중국 등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국가들의 압력 때문에 엔화가 더 이상 약세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이 서울지국에서 타전된 직후 1월 2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엔화가치가 2주일 만에 최고치로 반등했다. 30일에는 박경희 기자가 쓴 ‘월드컵 보안문제 때문에 한국 보험회사들 호황’이라는 기획기사가 월드와이드 톱 뉴스의 하나로 게시됐다. 블룸버그 단말기를 지켜보는 전세계의 투자자들이 한국의 보험사 주를 살지 안 살지는 그들의 선택이지만….

“What? I know, I know. She couldn’t get in!(뭐라고? 알아, 알아. 그녀는 들어가지도 못했어.)”

돌연 뉴스룸이 부산해졌다.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이 오찬을 겸한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하이닉스 독자생존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기사가 연합통신에 뜬 것이 14시 24분. 블룸버그 기자도 과천 청사 현장에 있었지만 “외신기자는 참석이 금지됐다”고 보고해 온 것이 오전 11시53분의 일이었다. 하이닉스 담당자인 킹 기자는 곧바로 산자부 외신담당 대변인을 찾아 이미 보도된 발언내용을 확인했다.

블룸버그 뉴스의 첫 번째 원칙은 다른 통신이나 뉴스 등에 보도된 확실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절대 쓸 수 없다는 것. 익명 인용은 극히 예외적이다. 취재원이 한사코 익명을 요구하면 기자들은 아까운 기사라도 포기한다. 실명을 밝힌 사람이 말을 뒤집는 일은 드물다. 통신기사의 속보성 때문에 자칫 놓치기 쉬운 ‘정확성’을 유지하려는 나름의 안전판인 셈이다.

산자부 대변인의 공식발언을 확보한 킹 기자는 곧바로 홍콩의 에디터를 전화로 찾았다. 헤드라인을 띄우기 위해서였다. 신속히 보도해야 할 중요소식인 ‘헤드라인(headline)’은 문장 한 줄을 넘을 수 없다. 헤드라인 처리 여부는 홍콩에서 결정한다.

상황 발생 29분 후인 14시53분, 그리니치 기준시간(GMT) 오전 5시 53분에 “한국 산자부 장관이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을 언급했다”는 한 줄의 헤드라인이 홍콩지국의 에디터 알렉 매케이브의 이름으로 동북아 지역뉴스 톱페이지에 떴다. 이미 하이닉스의 주가는 급상승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헤드라인을 쓰고 5분 안에 상황을 설명하는 두 문장 이상의 ‘헤드필(headfill)’을 써야 한다. 헤드라인 게재 15분 이내에는 더 자세한 ‘업데이트(update)’를 써야 한다.

기획기사를 제외하고는 블룸버그 기사스타일은 표준화돼 있다. 첫 문장에는 하나라도 덜어낼 수 없는 사건의 핵심사실, 두 번째 문장은 이에 대한 부가 설명, 세 번째 문장에서는 관계자의 실명 인용, 네 번째 문장에는 사건의 큰 맥락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스타일에 길들여지는 것은 기자만이 아니다. 정보를 보고 분초를 다투어 ‘사자’ ‘팔자’를 결정해야 하는 블룸버그 뉴스 소비자들도 패턴을 읽으며 정보의 핵심을 짚는다.

헤드라인을 불렀던 킹 기자는 신국환장관의 발언을 추가해 ‘업데이트’ 기사로 올렸다. 헤드라인이 뜬 지 13분 후, 서울 15시 06분 GMT 06시 06분이었다.

글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사진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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