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거리에서 바삐 움직이는 군중 사이에 잠시 서 있어 보세요. 내가 보이고 남이 보입니다.”
유진규씨(50·사진)는 ‘몸으로 말하는’ 마임(Mime·무언극) 전문가다. 음성 대신 얼굴 표정과 몸짓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그가 글을 썼다. ‘말하지 않기에 더 느낄 수 있습니다’(중앙 M&B)가 그것. 그가 책을 펴낸 이유는 절에서 조용히 예불을 드린 후 큰 스님과 편하게 나누는 ‘대화같은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마임하는 사람이 글도 쓰느냐’고 할때는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한 건 아닌가 쑥스럽더군요. 마임하는 사람이 색다른 느낌으로 바라본 세상이라고나 할까요. 젊은이들이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의 미래를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유씨는 이 책에서 수의사의 꿈을 접고 30년 동안 마임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에게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상상의 세계인 마임 무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였고 드넓은 ‘우주’였다.
“동물원 옆에서 살면서 수의학을 하고 싶었지만 내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했어요. 마임은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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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책에서 ‘착한 동화’에 ‘딴죽’을 걸었다. 자녀에게 읽어주던 ‘권선징악’ 일변도인 옛날 얘기가 ‘편협한 함정’이라는 생각이 든 것. 그는 콩쥐의 친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것이 팥쥐와 팥쥐 엄마가 포악해진 이유이며, 자신이 구해준 제비가 재물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흥부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못하는 정신병자로 묘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은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이 벌은 받는다는 이상한 공식으로 이뤄져 있어요. 나쁜 사람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 세상에 내 아이가 이런 시각을 가져서는 안되겠다 싶어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각색을 한 것이지요.”
아무도 가지 않는 외길을 걸어오면서도 내 길을 선택한 것에 만족한다는 유씨. 그는 5명이 전부인 극단 ‘유진규 네몸짓’을 운영하며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강원도 춘천 ‘마임의 집’에서 마임 강습과 공연을 마련하고 있다. 여전히 마임 장르가 척박한 상황이지만 14년째 이어온 ‘국제 마임축제’를 5월8일부터 5일간 춘천에서 개최한다.
유씨는 3년만에 창작 마임 ‘불립문자’를 무대에 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몰입하는 선(禪)의 세계를 그려볼 것이라고 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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