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박신영군(18·서울 휘문고 2년)을 인터뷰한 지 며칠 뒤 한 통의 e메일이 날아들었다. 아버지 박승군씨(46)로부터 온 편지였다.
“게임은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게이머도 당당한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로 시작한 편지는 뒤로 가면서 게이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게임만 잘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넓어져야 합니다. 게이머들이 게임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닦으면 누구보다도 게임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생각이 180도 달라지기까지 박씨가 아들과 벌인 실랑이는 한 마디로 ‘전쟁’이었다.
게임에 빠진 아들을 타이르고, 매도 들어보고 방에 가두어도 봤다. 하지만 신영은 가출까지 감행하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보름 동안 PC방에서 먹고 자면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을 찾아냈을 때 박씨 부부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신영이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 주명옥씨(45)는 “그 나이 때는 그 정도 게임은 하는거겠거니 여겼다”고 말했다.
주씨도 청소년 시절 한동안 갤러그에 빠져본 기억이 있기 때문.
그러나 신영의 게임에 대한 집착은 부모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중학교 때는 소풍을 빼먹고 PC방을 찾을 정도였다.
그 무렵 프로게이머들이 TV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영은 게이머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밝히기에는 세대의 벽이 너무 높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영은 참았던 말을 마침내 꺼냈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습니다.”
박씨 부부는 이번에는 회유책을 썼다. 더 이상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게임을 포기하고 요리를 배워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아들의 결심은 완강했다.
그렇게 신영과 대치를 하는 동안 어머니 주씨는 어렸을 적 일을 떠올렸다. 중학교 때 탁구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탁구 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일, 가수도 해보고 싶었지만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 어른이 되어서까지 두고두고 미련이 남던 일들이었다.
주씨는 “그런 기억을 되새기다 보니까 나중에 신영이가 부모 때문에 꿈을 버렸다는 원망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는 동안 신영에게도 원군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공학을 전공한 외삼촌은 주씨에게 “언젠가는 축구 경기처럼 많은 사람이 게이머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때가 올 것”이라고 충고했다.
주씨는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세계에는 분명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였죠. 그리고 신영이가 살아갈 미래의 사회는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 애의 가치관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인정을 하고 보니 게임을 대하는 신영의 모습이 단순히 오락을 즐기는 수준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박씨 부부는 신영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프로게임단의 감독이 신영의 재능을 알아보고 입단을 제의했다. 신영은 지난해말 KTF의 ‘매직엔스’ 게임단에 입단, 프로게이머의 꿈을 이뤘다.
신영은 지금은 학교를 빼먹지 않고 잘 다닌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합숙소에서 매일 8시간씩 맹연습을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해주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한눈 팔지 않고 노력해 반드시 최고가 되겠다”고 그는 다짐한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 자녀와 갈등 진단법
다음은 자녀와의 갈등을 진단하는 설문지.
각 항목에서 답이 ‘거의 늘 그렇다’면 5점, ‘보통’이면 3점, ‘전혀 그렇지 않다’면 1점으로 매긴다. 꼭 집어 어느 단계라고 답하기 곤란하면 각 단계의 중간 점수인 2점과 4점으로 매긴다. 설문은 부모가 한다.
①나는 외롭고 친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
②나는 우리 자녀한테 나쁜 부모라고 생각한다.( )
③자녀가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을 잘 한다.( )
④자녀는 나를 싫어하며, 나로부터 떨어져 있고 싶어한다.( )
⑤자녀는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나를 보고 잘 웃지 않는다.( )
⑥나는 자녀에 대해 좀 더 친밀하고 따뜻한 감정을 갖고 싶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해 괴롭다.( )
⑦내가 자녀를 위해 어떤 일을 해주어도 자녀는 나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아는 것 같지 않다.( )
⑧자녀에게 규칙적인 취침과 식습관을 가르치는 일이 힘들었다.( )
⑨자녀는 아침에 잘 일어나지 않으며 불쾌해 보인다.( )
각 질문의 점수를 합친다.
21점 이하〓세대 갈등이 별로 없다.
22∼31점〓세대 갈등이 비교적 있다.
32점 이상〓세대 갈등이 매우 심하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말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