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사후피임약 불법판매 성행

  • 입력 2002년 2월 20일 18시 12분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팔도록 돼 있는 응급 사후피임약 ‘노레보정’이 일반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도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 취재팀이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복용하면 피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노레보정의 국내 시판 한달째(21일)를 앞두고 19일 서울시내 일부 약국들을 대상으로 판매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약국이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약을 팔고 있었다.

또 약값도 제각각이었고 일부 약국은 경구피임약을 노레보정으로 속여 팔기도 했다.

게다가 산부인과에서 의사처방전을 받으려면 진료비와 초음파검사비로 최고 5만원까지 부담해야 하는 등 노레보정의 처방전 발급과 시판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A약국. 취재기자가 “사후피임약 있어요?”라고 묻자 약사는 의사처방전을 전혀 확인하지 않은 채 곧바로 “1만원이요”라며 노레보정을 내밀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사후피임약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이 약을 전문의약품으로 규정했으며 약사법(41조 제2항)은 약사가 의사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종로구 무교동의 B약국은 사후피임약을 달라는 주문에 노레보정이 아닌 일반 경구피임약을 종이에 싸서 건넸다.

그러나 의사들은 일반 경구피임약을 한꺼번에 먹는 것은 인체에 지극히 해롭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자가 “노레보정을 꼭 복용하고 싶은데 처방전이 없다”고 말하자 약사는 인심 쓰듯 “괜찮다”며 A약국보다 2000원 비싼 1만2000원을 요구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B약국 등 상당수 동네약국들도 의사처방전을 확인하지 않고 사후피임약을 1만∼1만2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노레보정은 비아그라처럼 의료보험 비급여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어 약국이 가격을 임의로 받을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C약국의 최영훈 약사(32)는 “지금까지 처방전을 갖고 와 약을 산 여성은 딱 한 명뿐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의사처방전을 받기 위해 취재기자가 서울시내 산부인과 병원들을 찾은 결과 1만∼2만원의 진료비 외에 2만∼3만원이 드는 초음파검사를 사실상 강제로 요구해 사후피임약 구입을 위해 많게는 5만원가량을 병원에 지불해야 했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검사로 임신 여부를 확인해 복용이 꼭 필요한 여성에게만 약을 처방하는 것이 의사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원 김모씨(여·29)는 “성관계 직후 초음파 검사로 임신이 판별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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