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1시간쯤 떨어진 파크시티의 한 쇼핑몰. 미국 대표팀이 쓰는 베레의 제작과 판매 라이선스를 가진 루츠(ROOTS)사의 매장에는 2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19달러 95센트짜리 베레를 사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오후 1시가 지나자 종업원이 ‘일단 품절’을 선언했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번호표가 배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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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분을 기다린 끝에 모자를 샀다는 남부 애틀랜타 출신 여대생 테라 노먼(20·조지아 서던대2)은 “‘미국을 사랑하는 미국인’임을 드러내기 위해 샀지만, 쓰는 모양에 따라 도널드 덕 같아 보이기도 하고, 요리사 같아 보이기도 해서 즐겁다”고 말했다.
베스트웨스던 플라자호텔에 근무하는 제시카 그레이(26)는 “암표상들조차도 경기 티켓과 모자를 바꾸자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의 이 열광적인 ‘애국심 패션’은 다른 나라 선수단이나 관람객들도 자극하고 있다. 캐나다인은 자국의 국기를 상징하는 단풍잎 모양의 모자를, 일본인은 흰색 바탕에 붉은 태양이 가운데 부분에 선명하게 그려진 헤어밴드형 모자를 보란 듯이 쓰고 몰려 다닌다. 노르웨이들은 바이킹 투구 모양의 모자로 자신의 뿌리를 과시했다. 물론 뿔 부분은 무겁지 않은 솜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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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는 솔트레이크에서 부는 모자 열풍을 ‘모자 히스테리(hat hyst-eria)’라고 보도했다. 루츠사의 공동창업자인 돈 그린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9·11테러 사건 이후 사람들이 더욱 미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상을 걸치고 싶어한다”며 “개막식에서 세계무역센터(WTC)에서 발견된 찢어진 성조기를 들고 입장한 미국 선수들이 모두 이 베레를 착용했던 것이 미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자 제작사인 루츠가 미국이 아니라 토론토에 본사를 둔 캐나다 기업이라는 것. 루츠사는 이미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캐나다 대표팀의 유니폼을 제작하면서 ‘붉은색 소년 모자’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영국 왕실의 윌리엄과 해리 왕자,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와 스파이크 리가 이 모자를 쓴 사진이 보도돼 움직이는 광고판 구실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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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국 동계올림픽 대표팀 유니폼 모자는 카우보이 모자 같은 전통적인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미국 올림픽조직위에 유니폼 제작사로 루츠를 추천했다.
유타주 내의 매장들은 하루 1000여개씩 베레를 공급받고 있지만 대부분 2∼3시간 안에 동이 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벌써부터 미국 최대 경매사이트인 이베이(ebay.com)를 통해 베레가 100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베레의 온라인 주문을 받는 사이트(www.usolympicteam.com)도 방문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루츠의 그린 사장은 “동계올림픽이 끝나도 이 베레 열풍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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