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부자가 되어 돌아온 귀성길

  • 입력 2002년 2월 21일 14시 40분


“여러분, 부자 되세요!” 가 요즘 뜨는 광고 멘트인데 나는 지난 설에 시댁인 순천에 다녀온 후 부자가 되어 있다.

6남매 가족들이 다 모일라치면 둥그런 큰 상으로도 서너 번을 차려내야만 한 끼가 해결되는 북적임 속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형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날을 새웠다. 아빠들은 Y자로 된 소나무가지를 꺾어다가 새총을 만들어 주고, 저수지 둑에서 연 날리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며 옛 생각이 난 듯 아이들보다 더 좋아한다. 그 얼굴에 연애시절 때의 맑은 웃음이 엿보인다.

명절이 끝난 뒤 객지에서 몰려든 자식들이 한꺼번에 떠나면 큰집이 더 휑해서 부모님이 서운해하신다며 형제들은 하나 둘 간격을 두고 떠나온다. 그런데도 유독 막내인 우리 부부를 늦게 가라고 붙잡으시는 어머님.

무슨 연유일까 했더니 다 이유가 있는 붙잡음이었다.

살림이 넉넉한 형들네같지 못한 우리가 걸렸는지 몰래 쌀 1포대를 차 트렁크에 넣어주셨다. 그뿐인가. 구워 먹으면 맛이 기막힌 호박고구마, 묻어 둔 김장독에서 막 꺼낸 새금새금 맛깔진 김장김치며, 이제 동치미로는 맛을 다해 깨소금에 무치면 색다른 맛이 나는 동치미 무며, 직접 찍어낸 약과며…. 트렁크를 보면 한달 양식이 있어 부자요, 직접 부모님을 뵙고 도시생활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재충전하니 마음이 또 부자였다.

결혼 초에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서 적어도 3주에 한번씩은 다니러 가겠다던 약속을 그 동안 잊고 산 게 너무 죄송했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비록 경제적으로 힘은 못 되어드리지만 아이들 데리고 자주 찾아뵙는 것이 더 큰 효도가 아닌가하고….

마음속에 고향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부모님의 건강을 빌어본다.

임미자 38·주부·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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