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씨(49·철학자)와 박성봉 교수(46·경기대 다중매체 영상학부)는 한국외국어대 ‘졸업동기’임을 알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김씨가 이탈리아어과 72학번으로 스웨덴어과 75학번인 박 교수보다 3년 빨리 입학했지만 군복무 때문에 1979년 졸업식을 함께 한 것.
이들은 최근 문화비평서 ‘깊이와 넓이의 4막16장’(김용석·휴머니스트)와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의 예술’(박성봉·일빛)을 펴냈다. 학교 동창이고 문화에 대한 각별한 관심까지 닮아서인지 자연스럽게 문화 전반에 걸친 이야기가 이어졌다.
▽김용석〓저는 문화는 물론이고 글쓰기, 과학 등에 대한 주제로 책을 썼는데 박 선생은 대중예술을 집중적으로 다루셨더군요. 대중예술을 ‘뽕 문화’로 바라본 게 독특했습니다.
▽박성봉〓대중예술을 ‘다양한 밥상’으로 바라봤습니다. 김 선생의 책은 철학을 전제로 여러 문화현상을 깊이있게 분석해 독자들이 읽으면서 자극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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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록 제책 1장에만 대중예술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과 대중예술이 과학기술의 발달과 연관이 있고 문화와 문명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박 선생과 ‘공통분모’라 할 수 있죠. 2000년부터 기획한 제 책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어요. 탈고를 정해놓지 않고 썼기 때문이죠. 마지막에 첨가한 부분이 ‘뷰티풀 마인드’ 같은 전기와 리얼리즘을 다룬 영화가 판타지물과 함께 올해 인기를 얻을 만한 장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박선생은 ‘판타지 붐’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박〓‘반지의 제왕’ 등의 판타지의 인기는 만화책 게임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봅니다. 판타지 문학이 뜨면서 상대적으로 무협소설을 잠식한 것 같아요.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면 무협도 판타지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성공은 의외였습니다. 로저 젤라즈니의 ‘앰버 연대기’나 C.S. 루이스의 ‘마법사의 조카’같은 판타지 명작들도 있는데 왜 유독 이 ‘해리포터…’만 초등학생의 필독서가 되고 중장년층의 호응을 얻고 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김〓‘해리포터…’의 경우 영국에서 발표 당시 ‘…철학자의 돌’이었는데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마법사의 돌’로 바뀌었지요. 할리우드의 상업적인 마케팅이 성공하자 국내에서도 동반 인기 상승이 이뤄진 셈입니다. 문화적 조건이 세계화되기도 했고요. 박 선생 책에서 일본 만화가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박〓사실 일본 만화가 국내 만화계에 끼친 영향은 이중적입니다. 일본의 다채로운 표현기법들은 만화 발전에 도움이 된 반면 그런 만화들이 쏟아지면서 열악한 국내 만화가의 상황이 어려워졌지요. 일본은 ‘가까운 이웃’이면서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하죠. 그래도 최근 국내 대학에 만화학과를 개설하는 등 ‘문화적 대기권’이 넓어진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김 선생의 경우 이원복 선생의 만화가 글자를 빼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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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저는 만화에 대해서는 박 선생에게 배워야 할 정도로 문외한입니다(웃음). 상세하게 설명하려는 이원복 선생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대중예술은 누구나 보는 것이거든요. ‘말의 이미지화’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뿐입니다. 박 선생도 대중스타인 ‘핑클’의 옥주현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박〓‘핑클’의 옥주현이 ‘루비’를 노래하는 모습이 예쁘게 보였어요. 강의시간에 이 얘기를 했을 때 첫 반응은 ‘성형미인’이라는 등 부정적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다른 학생들도 ‘핑클’ 예찬론을 펼치기도 하더군요. 백기완 선생께서 ‘핑클’ 공연을 다녀오신 후 ‘한국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역할을 고민해달라’는 내용 글을 인터넷에서 보고 공감했어요. 다만 요즘 세대들의 다양한 개성은 존중해야죠.
▽김〓개성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저는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보면서 ‘영화 정보 그 자체’라는 생각을 했어요. 진정한 평론은 나름의 의미를 뽑아내고 주관적인 해석을 하는것이기 때문이죠. 주인공이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등의 정보는 인터넷에 넘쳐흐르지 않습니까?
▽박〓화제를 바꿔 애니메이션 ‘슈렉’의 피오나가 괴물로 바뀌는 것이 너무 했다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제 경우는 정치적 함의가 있긴 해도 ‘동화’라는 상상의 장(場) 안에서 선이 승리하는 ‘게임의 룰’을 지켰다고 봅니다. 농구는 여섯 번이나 반칙을 해도 정당하지만 실제 일상에서는 잘못을 하면 안되죠.
▽김〓‘슈렉’의 입장에서는 피오나가 괴물로 바뀌는 게 바람직합니다. 물론 ‘감히 동물이 인간과 맺어지느냐’는 인간의 오만함을 지적할 수는 있겠군요. 문제는 파콰드 영주입니다. 그는 ‘디즈니’에서 쫓겨난 ‘드림웍스’ 카젠버그가 복수의 대상을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죠. 큰 머리에 손과 발을 짧게 묘사한 것은 그 의도를 떠나 ‘불공정’합니다. 몸이 왜소한 사람을 왜곡해 묘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박〓김선생은 인문학자로 ‘위기의 인문학’이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시나요?
▽김〓미래가 빨리 현재가 되는 시대입니다. 이제 인문학자도 시대를 읽는 눈이 있어야 해요. 인문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해야 합니다. 박 선생은 책의 결론에서 ‘교육이 희망’이라고 하셨더군요.
▽박〓21세기에 ‘문화적 대기권’은 변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주입하는 교육도 달라져야 합니다. 자세를 낮추고 젊은이들의 갖고 있는 ‘씨앗’에 물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더불어 살아야지요.
▽김〓맞는 말입니다. 덧붙여 비평문화가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윤리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비평가들이 문화현상을 분석 비판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합니다.
▽박,김〓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 즐거웠습니다.
정리=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저자 소개
▽ 박성봉
한국외국어대 스웨덴어과 졸업후 스웨덴 웁살라대 미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음.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며 서울대 성균관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대중예술 강의. 저서 '대중예술의 이론들' '대중예술의 미학' 등 출간.
▽ 김용석
한국외국어대 이탈리어과 졸업후 이탈리아 로마 그레고리안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음. 그레고리안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1997년 귀국해 저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메일을 주고받다’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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