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로 보는 1972년의 사회상

  • 입력 2002년 3월 5일 17시 01분


밀수품 적발과 연탄가스 사고를 보도한 당시의 동아일보 기사
밀수품 적발과 연탄가스 사고를 보도한
당시의 동아일보 기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72년 3월. 그때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민들은 어떤 일에 웃고 울고 분노했을까. 당시 동아일보 사회면을 들여다보자.

누런 용지에 한문투성이의 깨알같은 글씨에 세로로 편집된 8면짜리 동아일보 3월 1일자 사회면 머리기사에는 ‘노다지 금밀수 한국은 과녁’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국내 금값이 국제시세보다 70% 비싸고 적발돼도 처벌이 가벼워 부산항과 김포공항을 통해 억대의 금괴밀수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취재기자는 현 대한매일 사장인 전만길 기자.

밀수는 당시 망국병이라며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단속하던 문제였다. 특히 부산발 주요기사는 거의가 밀수 관련으로 7일과 8일자에도 연거푸 일제TV 등 밀수품 적발 기사가 실려 있다.

같은 날 다른 사회면. 버스 택시요금을 인상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은 차량 4702대가 적발돼 691대가 운행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요금을 올리지만 인상 뒤에는 딴전인 것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사가 드물었던 당시에는 박사 학위를 받으면 모두 신문에 이름이 나왔다. 3월2일자에는 서울대 70명, 경북대 22명 등 박사학위를 받은 252명의 이름이 학위별로 모두 나와 있다. 60년대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사진과 함께 전국 일간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날 가장 큰 광고는 동산유지의 ‘다이알비누’.

4일자에는 만화가게에서 담배와 술을 판 주인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뉴스가 주요 기사로 다뤄졌다. ‘진주시 최모씨가 자신의 만화가게에서 담배와 막걸리 등 주류를 갖춰놓고 만화를 보러온 같은 마을 김모군(13) 등 5명에게 신탄진 1개비 5원, 막걸리 한 잔 10원씩에 판 혐의’이다. 이날 TBC의 새 인기프로는 안인숙 노주현 여운계가 나오는 ‘사슴아가씨’.

6일의 ‘밝은 내일을 위한 새생활 캠페인’ 시리즈에는 폐습의 하나로 치맛바람을 다뤘다. ‘금권만능이 낳은 독소’‘위풍당당한 세도가 치마, 행차하면 고관 줄지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11일의 사회면 머리기사는 ‘국민교 신축난, 콩나물 교실 여전’이다. 대도시의 인구집중으로 취학아동은 늘어나는데 학교부지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내용이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국민학교는 정원이 60명인데 한 반에 평균 85명이 수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반 정원을 35명까지 낮춘 지금과 비교하면 콩나물시루 정도가 아니다.

외제차가 드물었던 당시 국내 수입차 총수는 1419대. 한진상사의 조중훈씨, 삼성물산의 이병철씨, 부산 동명목재의 강석진씨가 벤츠600을 갖고 있고 청와대에도 1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벤츠600의 당시 가격은 2000만원 가량. 또 캐딜락은 대한농산의 박용학씨, 한국화약의 김종희씨가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적었다. 이날 최대의 광고는 서울약품의 ‘원기소’.

15일의 사회면 머리기사는 매우 재미있다. 서울시내 목욕탕 업자들이 대중탕 목욕값을 80원에서 130원으로 대폭 올리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자 서울시는 이를 강행할 경우 영업정지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당시는 목욕값이 협정요금이어서 함부로 올리면 강력한 행정처분을 받던 시절이었다. 16일 사회면에는 아니나 다를까 관청의 힘에 눌려 목욕탕 업자들이 요금인상 계획을 철회했다는 속보기사가 실려 있다.

20일자 2면에는 머리기사로 ‘쥐를 잡읍시다. D데이는 25일 저녁 7시’라는 박스기사가 쥐잡기 캠페인포스터 사진과 함께 크게 실려있다. 정부예산 1억4000만원을 들여 쥐약을 무료로 나눠주고 5200만마리를 잡는 것이 목표라고 소개하고 있다. 가난하던 시절 식량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

21일자 1면 머리기사는 공무원 봉급을 15% 올린다는 내용. 올린 봉급은 대통령이 31만8000원, 장관이 17만5000원, 5급을 13호봉이 2만3700원, 순경 1호봉이 1만9200원이었다. 당시 명보극장에서 인기 상영 중이던 게리 쿠퍼,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입장권은 조조 200원, 일반 250원.

봄인데도 날씨가 축축해지니 연탄가스 중독으로 신혼부부 등 12명이 죽는 등 사고가 급증한다는 기사가 24일자 사회면에 실렸다.

당시에는 고정간첩 검거기사도 주요 메뉴. 이와 함께 27일자에는 식모를 구하지 말고 가사를 돌보자는 새생활 캠페인도 실렸다.

군 검찰 경찰 중앙정보부가 나서 야간통금 위반을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는 기사가 3월 마지막날의 사회면 주요기사였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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