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시절. 서커스단은 으레 골목 어귀마다 포스터를 붙이면서 등장했다. 동네 공터에 천막 가설 극장이 하늘 높이 세워질 무렵 잡음이 잔뜩 섞인 확성기 소리로 온 동네는 시끌벅적했다. 작은 읍내에서 20∼30일씩 공연을 해도 어디서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공연장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추억의 서커스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비록 예전보다 규모는 크게 줄었지만 TV와 영화, 연극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연중 무휴로 매년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하는 동춘서커스단(www.circus.co.kr). 국내 유일의 이 서커스단은 1925년 창단돼 70여 년간 전국을 누비며 공연해 온 국내 서커스사의 산증인이다. 그동안 공연한 횟수만도 5만회가 넘으니 이 서커스단의 공연을 본 사람은 족히 수백만명은 되는 셈이다.
박세환(朴世煥·58) 단장은 “소속 단원만 250명이 넘을 정도로 서커스가 호황이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코미디언 서영춘씨를 비롯해 배삼룡, 백금녀, 남철, 남성남, 장항선씨 등 수많은 스타가 이곳에서 배출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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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속단원은 전성기 때의 5분의 1인 50명. 동물들도 10여 마리로 전성기 때에 비하면 종류나 수가 턱없이 모자란다. 박 단장은 “인기를 끌었던 코끼리 ‘제니’는 몇 년 전 죽어 박제로 보관하고 있다”면서 “코끼리가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예전의 영화(榮華)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커스가 조금씩 인기를 되찾아 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그래서 동춘도 요즘 활기를 띠고 있다. 현재 전남 영광읍과 충남 서산시에서 공연하고 있는데 공휴일에는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곡예사들이 공중에서 아찔한 순간들을 연출하고 외발 자전거 타기와 통 돌리기 등 곡예가 연출될 때마다 박수 소리가 요란하다. 2시간10분가량 진행되는 동안 도중에 나가는 손님이 없을 정도로 다들 넋을 잃고 구경한다.
박 단장은 “손자 손녀와 함께 구경온 할머니 할아버지가 옛날과 너무 똑같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면서 “젊은이들도 점점 많이 구경오고 조만간 전용극장도 생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춘은 20일부터 6월까지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앞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내 호숫가에서 서울 공연을 한다. 02-6383-9141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