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집집마다 보급될 당시 ‘안방 극장’이란 말이 생겨났지만 홈시어터는 말 그대로 이를 지향하는 첨단 기기들의 모음이다.
홈시어터 기기들 가운데 영상을 맡는 것은 고화질의 TV 또는 프로젝터+스크린이다.
오디오 부문은 주로 5.1 스피커라 불리는 6개의 스피커들이 맡는다. CD처럼 생겨서
비디오 테이프의 역할을 대체하는 DVD와, DVD 플레이어가 영상과 음성 신호를
만들어낸다. 이들 신호를 전달받아 해독하는 역할을 하는 AV 앰프가 TV(혹은 프로젝터)와 스피커들에 정보를 나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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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서울 방배동 아파트에 살다가 지난해 12월 말 경기 성남시 분당의 단독주택형 빌라로 이사한 의사 K씨(51). 오랜 준비 끝에 거실에 깔끔한 홈시어터를 꾸몄다.
K씨는 진료의 스트레스를 영화와 음악으로 풀어왔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웠으며 1000장이 넘는 LP 음반을 모았을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높다. 그러나 아파트는 음악 듣기엔 여러 모로 눈치 보이는 곳이었다. 지난해 초 숙원이던 이사를 단행하기로 하고 이사갈 집에는 홈시어터를 갖추기로 마음 먹었다.
음악 마니아 답게 가전사들이 내놓은 홈시어터 세트를 사들이기보다는 예산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꾸며 보기로 했다.
우선 홈시어터 전문지들을 훑고 용산 전자상가 등에서 발품을 팔며 마음에 드는 기기 후보들을 골랐다. 이사갈 2층 집의 1층이 33평, 거실이 5평 정도로 정해지자 지난해 9월경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에스아이(SI)와 함께 구체적인 디자인에 들어갔다. 그는 우선 파나소닉 PDP(42인치)와 샤프비전 프로젝터, 기쿠치사의 스크린을 마련했다. B&W 스피커와 데논 앰프도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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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을 모두 거실에 내놓을 경우 어지러워질 게 뻔했다. 아깝지만 그간 모아온 1000장의 LP 음반을 남에게 줘버렸다. SI는 이사갈 집의 거실에 홈시어터 기기들을 수납할 목조 가벽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크기는 가로 2.7m, 세로 2.4m, 색깔은 카키빛이 감도는 메이플. 스크린을 천장에 넣고, 그밖의 기기도 가벽에 들여 넣어 쓸 때만 빼내기로 했다. PDP 화면과 프런트 스피커 1쌍만 일상적으로 가벽 밖에 나오게 하니 거실이 심플하고 편안해졌다.
가벽에는 모두 11개의 수납 코너를 마련했다. 프런트 스피커, 서브우퍼, CD 및 DVD타이틀 등을 별도의 코너에 따로 놓게끔 했다. 하지만 PDP는 몸체 뒤로 열이 나와 원래의 하얀 벽을 그을리게 할 우려가 있었다. 생각 끝에 PDP 뒤에는 고무 처리한 목재를 따로 댔으며 대신 PDP 위 아래의 수납장 가로 판에 주먹만한 크기의 구멍을 2개씩 냈다. 열도 빠져나가고 나중에 PDP를 운반할 때 손을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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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목조 가벽의 왼쪽끝 세로 형 코너에는 케이블 TV 수신용 컨버터, 비디오 플레이어, CD 플레이어, DVD 플레이어, 컴퓨터 본체 등 ‘복잡한 기기들’을 모조리 모아서 넣었다. 이들로부터 나온 각종 선들은 벽 속에 집어 넣었다. 선들은 천장을 통해 뒷벽 쪽으로 연결했으며 뒷벽 아래 소파 뒷부분에는 각종 잭을 꽂는 스틸 판을 만들었다.
한편 리어 스피커 1쌍은 거실 벽 뒤쪽 윗 부분에 넣고 우물형 천장에 가려 보이지 않게 했다. K씨는 “스피커 위치 때문에 음향이 미세하게 변질되는 부분이 있다”며 “하지만 따로 방을 한칸 내어 홈시어터로 만들지 않고 거실에 홈시어터를 갖추려다 보니인테리어를 우선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 전체의 리모델링 비용 가운데 홈시어터와 관련된 비용은 대략 1200만원 정도. 일단 숙원 사업을 마치고 나서 처음 시청해본 것이 영화 ‘글래디에이터’였다.
K씨는 “뒤에서 호랑이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앞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K씨는 프로젝터로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의 ‘DLP 방식’을 구입했는데 이른바 ‘필름 질감’이 있다는 걸 느꼈다고 평했다. 미국 영화 ‘삼나무에 내리는 눈’은 설경(雪景)이,‘병 속에 든 편지’는 바다 풍경이 볼 만 하더라는 것이다.
K씨는 가끔 친구나 친척들이 놀러오면 거실의 불을 끄고 홈시어터를 ‘가동’해본다. “와! 극장 같다”는 반응을 많이 듣는다. 60년대말 동네에 흑백 TV 한 대 들여놓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던 시절의 탄성처럼….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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