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표준이 대두된 배경은 역시 정보기술(IT)경제의 도래고 이는 미국이 주도한 흐름이다. 인터넷 통신방식인 ‘TCP/IP’는 미 국방부와 대학들이 국방의 목적을 위하여 만든 것이나 사실상 세계 표준이 되었다.
사실상의 표준은 시장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포럼과 컨소시엄을 축으로 이루어진다. 이긴 자가 시장을 다 지배할 수 있는 이른바 ‘Winner takes it all’의 표준전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기업들은 표준을 중심으로 과거의 경쟁자들이 공동전선을 펴는 합종연횡을 수없이 벌인다.
차세대 기록 미디어로 불리는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를 둘러싸고 소니와 필립스 연합군과 도시바, 마쓰시타를 중심으로 한 일본 유럽 미국 7개 기업이 벌인 표준 경쟁은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에는 소니와 필립스가 표준 전쟁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지만 타임워너와 MCA가 도시바 진영에 합류하면서 시계 제로의 양상으로 변했다. 결국 어느 한 진영이 기술 및 시장에서 타 진영을 압도할 수 없었고 콘텐츠업계 등이 타협을 요구해 양 진영은 90년대 말 대타협에 이르렀다. 표준이 정해지자 보급이 지지부진했던 DVD는 21세기 들어 빠른 속도로 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표준전쟁으로는 에릭슨, IBM, 인텔이 연합한 ‘블루투스’ 진영과 컴팩과 HP가 연합한 ‘홈RF’ 진영이 팽팽히 대립중인 무선 네트워킹 분야가 있다. 에릭슨을 필두로 한 유럽진영의 ‘WAP’와 마이크로소프트의 ‘ME’가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무선 인터넷 프로토콜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무선 인터넷분야에서는 일본의 NTT도코모가 ‘i모드’로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가장 큰 전쟁은 3세대 이동통신규격을 둘러싼 경쟁. 유럽의 GSM방식에서 출발한 ‘W-CDMA’진영과 한국 등 미국식 CDMA를 미는 진영이 맞서고 있다. 양 진영의 경쟁이 치열해 이를 중재하기 위해서 ‘OHG’라는 조직까지 생긴 것을 보면 표준이 갖는 정치 경제적 의미를 가늠할 수 있다. 즉 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있어 두 개의 표준이 공존할 수 없으므로 한쪽의 승리가 다른 쪽의 패배로 직결되는 제로섬의 게임구도로 가든지 업체들이 일부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대타협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자국의 3세대 이동통신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독일 기업의 지원을 얻어 독자적인 표준을 구축하려는 것에서 보듯 표준에 집약된 경제민족주의도 뿌리깊다.
결국 표준전쟁의 원동력은 시장의 글로벌화다. 거의 모든 시장에서 국경의 의미가 희박해지는 시대에 기업이 중심을 이루는 시장주의와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주의는 지금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노승준 애틀러스리서치그룹 대표이사
▼현재 진행중인 IT분야의 표준전쟁▼
표준분야 | 주도기업 | 경쟁기업 | 도전기업 |
무선인터넷 프로토콜 | WAP(스웨덴 에릭슨) | ME(마이크로소프트) | i모드(NTT도코모·일) |
휴대용무선단말기(PDA) 운영체제 | 팜(미국 팜) | 윈도CE(마이크로소프트) | 리눅스(세계 각국) |
무선네트워킹 | 블루투스(에릭슨, IBM, 인텔 등) | 홈RF(컴팩, HP 등) | |
디지털TV | ATSC(미국진영)↔DVB(유럽진영) | ISDB(일본) | |
3세대 이동통신 | 비동기식 W-CDMA(EU) | 동기식 CDMA2000(미국·한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