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 '자식부자 마음부자' 9급 공무원 윤선억씨

  • 입력 2002년 3월 7일 14시 22분


서울 강서구청 토목과에 근무하는 9급 공무원 윤선억씨(44)는 일곱 자녀를 두었다. 서울시에서 ‘슬하에 자녀가 가장 많은 공무원’이라는 공식 기록을 갖고 있다.

아이가 일곱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이런 식이다.

“위로 딸이 내리 여섯이고 막내가 아들이죠?”

공주 넷에 왕자 셋이라고 하면 다음 질문은 이렇다.

“그럼 아들 셋이 쌍둥인가요?”

그것도 아니라고 하면 “고아들을 입양해 키우시나요”하거나 “피임을 하지 않는다는 모르몬교도세요” 한다.

그래도 윤씨가 머리를 끄덕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반은 지치고 반은 열을 내며 묻는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요즘 세상에 애를 일곱씩이나 낳은 이유가 뭔가요?”

윤씨 부부는 군색한 답변을 찾느라 늘 쩔쩔매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묻고 싶어진다.

“아이를 갖는 데 이유가 있나요?”

금실 좋은 부부가 살을 맞대고 살다보면 애가 자연스럽게 들어서는 것이고 아이가 생기면 낳아 길러야 하는 게 부모 아닌가 말이다.

윤씨 부부의 소중한 7남매는 나이 순서대로 주애(20) 주연(18) 주영(14) 진주(13) 동욱(11) 동준(6) 동현(4)이다. 진주까지가 딸이고 그 아래 셋이 아들이다. 맏이와 막둥이의 나이차는 열여섯살.

윤씨 부부와 7남매가 사는 집은 좁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좁다란 골목길로 접어들고도 한참을 걸어야 방 세 칸짜리 윤씨네 집이 나온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문간방은 첫째와 둘째딸이 쓰는 방이다. 가운데방에서는 엄마 임명순씨(43)가 어린 동준이와 동현이를 끼고 자고 맨 구석방은 아버지와 큰아들, 셋째와 넷째 딸이 함께 잔다.

“부부가 떨어져 주무시는 거예요?”

“이제 그만 낳을 건데요, 뭘….”

한 배에서 나서 똑같이 모유를 먹고 똑같이 천기저귀를 차고 자랐지만 애들 모두 생김새가 다르듯 성격도 다르다. 네 자매는 혈액형마저 제각각이다. 첫째 주애는 A형, 둘째는 O형, 셋째가 B형, 넷째 진주는 AB형이다. 첫째와 셋째는 성격이 차분하고 꼼꼼해 잘 어울려 지낸다. 둘째 주연이는 “집이 좁다”며 어려서부터 밖으로만 돌아서인지 사교적이다. 성격이 털털한 넷째 진주와 잘 통한다. 진주는 두 살 아래인 바로 밑의 동생 동욱이와는 티격태격 하지만 여섯째 동준이와 막내 동현이는 물고 깨물며 귀여워한다. 동준이와 동현이는 서로 얼굴에 생채기를 내며 엉켜 지내는 사이다.

역시 미덥기는 맏딸이다. 막둥이가 생겨 엄마 배가 불러오자 “우리집 형편에 나랑 상의도 않고 또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하느냐”며 한동안 토라져 있던 맏이 주애. 하지만 막상 막둥이가 태어나자 똥기저귀를 갈아주고 업어 재웠던 아이도 주애였다.

딸아이들은 “집이 너무 좁다” “내 방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작은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지낸다. 집 앞 골목길에서 시끌벅적 공차기 놀이에 정신없는 사내 녀석들을 보면 으레 동욱이 형제들이다.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이웃에 어울려 지낼 또래들이 없다보니 일곱 남매는 서로서로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낸다.

7남매가 이리 저리 그룹을 지어 어울리는 것을 보면 남동생과 달랑 둘이 자라 늘 허전했던 윤씨는 뿌듯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찡해온다. 월 100만원 정도의 박봉이라 제대로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를 못해주는 것이 안타깝다. 머리가 굵은 딸들은 초고속 인터넷망에 가입해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한다. 맏딸의 대학 등록금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다. 엄마는 밥상을 펴놓고 조무래기 아들 녀석들을 데리고 숙제를 지도한다.

공부에 몰두하다 보면 아버지 윤씨가 퇴근해서 집에 오도록 책가지를 늘어놓고 있을 때가 있다. “왜 이렇게 지저분해” 하며 윤씨가 드물게 목소리를 높이는 게 이 때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하고 달려오는 딸 넷이 엄마의 원군이 돼 부부싸움은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 버린다. 윤씨는 싱거운 생각이 들어 씩 웃는다. ‘아들은 자라면 내 편을 들어주려나. 그래도 셋밖에 안되는군’.

사실 윤씨는 성실한 남편이다. 군 복무 시절 휴가길에 버스에서 안내양으로 일하던 아내를 처음 만났다. 통통한 볼살이 복스러워 보여 자꾸 길을 물어보다가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됐다.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날 때마다 윤씨는 뛸 듯이 기뻤다.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부인 임씨는 대식구 살림을 꾸려가느라 남편 생일을 잊어도 윤씨는 칠월칠석 아내의 생일만 되면 미역에 쇠고기 반근을 사 들고 들어온다. 방이 비좁아 2교대로 먹어야 하는 생일상이지만 왕후의 밥상이 이보다 풍성할까.

해가 저물고 밤이 되도록 윤씨네 집은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좁다랗게 누워 자리 다툼을 하느라 모두들 잠이 들 때까지는 소란스럽다. 고단한 윤씨 부부는 아이들이 편히 잘 수 있도록 몸을 조그맣게 웅크리고 자는 게 버릇이 됐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