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가 중심이었던 80년대 반미운동이 주한미군 철수 등 구체적 이슈를 내세운 사회 운동적 성격이 짙은 ‘운동권 반미’ 였다면 최근의 반미운동은 미국식 영상 소비문화에 대한 불특정 다수의 젊은이들의 반발과 인터넷 공간에서 조직적으로 펼치는 미국 상품 불매운동 등 ‘트렌트 반미’ 라는 것이 특징.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에는 9·11 사태 이후 10여개의 반미 관련 카페가 있었으나 김동성사건을 계기로 50여개로 늘었다. 회원 수도 3만5000여명에 이른다. 7일 현재 5488명이 가입해 있는 ‘반미운동본부’ 는 오프라인까지 운동을 확산, 9일 오후 3시경 서울 중구 명동 롯데리아 앞에서 미국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반미운동본부 운영자인 대학생 백민규씨(20)는 “과거사 문제로 평소 감정이 좋지않았던 일본과는 달리 미국에 대해서는 부러운 점이 더 많았지만 김동성선수 사건을 계기로 일본보다 미국이 훨씬 더 싫어졌다” 고 말했다.
지난달 28일부터 3일까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태극기 게양운동을 벌인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 이현정 과장은 “행사기간 동안 무려 5만여명이 접속해 운영자도 놀랐다” 며 “네티즌들이 벌이는 미국 제품 불매 리스트에는 맥도날드 버거킹 켄터키후라이드치킨(KFC) 던킨도너츠 스타벅스 코카콜라 허쉬초콜렛을 비롯한 식음료에서부터 폴로 나이키 리바이스 게스등 잡화까지 다양하다” 고 소개했다. 불매대상으로 거론되는 브랜드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실제 매출엔 별 영향이 없다” 고는 하면서도 불매 운동이 장기화할 경우 매출에 타격이 있을수 있다며 사태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서울 도심의 한 맥도널드 대리점 관계자는 “실제로 동계올림픽 이후 매출이 5%가량 줄었다” 며 “고객들의 동향을 살펴 가며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교보문고 관계자도 “9·11 테러 이후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과 비례해 반미관련 서적들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며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김동성 사건을 계기로 독자들의 관심도 다시 고조되고 있다” 고 전했다.
평소 친미성향이었거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젊은이들이 9·11 테러이후 ‘강한 미국’ 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된 것도 특징.
회사원 강모씨(28)는 최근 미국 LA로 출장을 갔다가 미국 공항의 과도한 검문검색에 질려 ‘반미주의자’ 가 돼 돌아왔다. 공항 검색대원들이 여성들의 손가방까지 일일이 열어 보는 것은 기본이고 맨바닥에 신발까지 벗으라고 요구했기 때문. 세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비행기에 올랐지만 갑자기 “다시 보안검색을 해야 한다” 는 기내방송이 흘러 나와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로 인해 강씨 등 12개 노선 비행기에 탑승했던 수천여명의 승객들이 검색 과정을 처음부터 또 다시 거쳐야 했다.
강씨는 “밤 10시 15분에 출발했어야 할 비행기는 새벽 2시가 거의 다 돼서야 이륙할 수 있었다” 며 “미 공항측은 단 한번도 사과 방송을 하지 않았고 검색 과정에서도 승객들의 불편을 줄이려는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고 분개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람보 식 애국주의에 대해서도 젊은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콜래트럴 데미지’ ‘블랙 호크 다운’ 등 최근 ‘팍스 아메리카’ 를 내세운 영화의 경우 미국 개봉 성적에 비해 국내 흥행 실적이 크게 저조하다. 슈퍼 스타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콜래트럴…’ 은 미국에서만 3760여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지만 국내에서는 서울 관객 20여만명에 그쳤다. 특히 ‘콜래트럴…’ 은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남미 테러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구잡이 식의 살인을 감행하는 한 미국 소방수의 얘기를 그려, 개봉 당시 미군이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거주지역에 융단 오폭 한 것과 비슷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은 미국에서 1억467만 달러를 벌어 들이며 ‘대박’ 을 터뜨렸지만 국내에서는 서울 관객 30여 만명에 그쳤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한 사회학자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반미운동은 미국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오만함에 대한 감정적 차원의 반발로 보인다” 면서 “따라서 이같은 반미운동이 장기화하거나 심각한 한미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허문명·이승헌·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