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장사는 돈보다 사람을 버는 것" '상경'

  • 입력 2002년 3월 8일 17시 30분


◇ 상경/스유엔 지음 김태성 외 옮김/564쪽 1만8000원 더난출판

‘한국엔 상도(商道)가 있다면 중국엔 상경(商經)이 있다, 한국에 임상옥이 있다면 중국엔 호설암이 있었다.’

조선의 거상 임상옥을 그려 낸 최인호의 소설 ‘상도’가 250만부 이상 팔리면서 장안의 지가를 높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업을 하다 보면 아무리 애써도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인재를 기용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파트너와 함께 하는 많은 일들이 놀라운 경략(經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백척간두에 서서 내리는 결정은 숨막히는 작업이다.

‘상경’은 이런 상황을 꿰뚫는 지혜를 명징하게 들려주는 경전이라 할 만하다. 그 경전의 주인공 이름은 호설암이다. 청대의 거상이자 현재 중국 사업가들의 우상이며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사업가를 넘어 중국의 상도를 이룩한 영웅이다. 탁월한 용인관과 시세를 활용하는 시국관, 정부(政府)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관상관, 지모와 재빠른 행동의 모략관, 시장을 만드는 영업관, 성실과 신의를 바탕으로 한 처세관으로 과감하게 일을 성사시킬 줄 아는 거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웅변이 소중한 것은 차가운 경영기술만으로는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원칙과 정신으로 밝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지혜를 들려 준다는 점이다.

그 지혜는 무엇인가? 상인의 도가 ‘동명’(洞明·洞이란 꿰뚫음이요, 明이란 분명함이다), 즉 세상사를 헤아리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살피는 데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종래 서양의 과학적 지식이나 테크닉들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며 말끔하게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은 경영이론에 사람이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총18장으로 이뤄진 상경은 차원 높은 상술과 상도의 비밀을 하나씩 조목조목 풀어 준다.

조선에 임상옥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호설암이 있었다. 호설암이 활동했던 주무대인 상하이의 19세기(위쪽)와 오늘의 모습

호설암과 임상옥은 일치하는 점이 많다. 첫째, 똑같이 19세기를 살았으며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온갖 풍상을 견디고 당대 최고의 거상이 된 역정이 너무나 흡사하다. 둘째, 임상옥이 홍경래의 난을 겪어야 했다면 호설암은 태평천국의 난을 겪으며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셋째, 임상옥은 자신의 인삼을 모두 과감하게 불태우는 지혜로 거상으로 발돋움했고 호설암은 가진 돈 전부를 왕유령에게 주는 인연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넷째, 임상옥이 구제염을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듯이 호설암은 약으로 전란과 대란 후에 질병으로 시달리는 백성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 다섯째, 임상옥은 죽을 사(死), 솥 정(鼎), 그리고 계영배로 삶의 지침을 삼았고, 호설암은 성신(誠信)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따라서 두 사람의 정신은 실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도 ‘이익’을 형성하는 기본 가치에 있어 ‘돈’보다는 ‘사람’을 중시하고 있다. 임상옥은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고 했다. 호설암은 “친구를 한 명 더 사귀면 길이 하나 늘어나지만 적을 한 명 더 만들면 담장이 하나 더 생긴다. 인간관계가 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접점만큼 그 차이도 분명하다. 바로 지략과 상술의 다양함과 정교함이다. ‘상경’이 소설이 아닌 ‘경영 전략서’로 가치를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공룡으로 만든 유전자가 ‘유태인의 상술’이라면 ‘동양인의 상도’는 병든 공룡을 대체할 새로운 유전자가 될 수도 있다. 바야흐로 미래의 역사를 지배하려는 중국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 호설암은 중국의 힘과 경영정신을 집대성한 인물로서, 순간순간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우리에게 탁월한 전략뿐 아니라 지혜로운 ‘동명’의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윤윤수 FILA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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