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V, 사진, 광고, 컴퓨터 게임 등을 통해 온갖 이미지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깊은 의미’를 가진 문자 문화는 사라지게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미지와 글이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만나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미지가 범람한다고 해서 글의 문화가 고사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글은 사유와 감정의 표현에 필수불가결한 차원, 즉 분석적 차원을 제공합니다. 이미지는 문장이나 단어보다 더 즉각적인 파토스(pathos)의 힘을 갖고 있지만, 로고스(logos), 즉 언어와 이성 없이는 생각이나 사상을 정확히 전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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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몽 원장 인터뷰 전문 |
오히려 1세기 전 입체파 화가들의 콜라주 기법에서 시작된 이미지와 언어의 결합 시도가 이제 정신의 기본적 활동을 자동적으로 재생산하는 PC의 발명으로 완성되고 있습니다. 글의 문화가 위협받기는커녕, 글의 문화에 새로운 기회, 즉 이미지 문화와 협동해서 함께 발전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만화, 뮤직 클립, 인터랙티브 게임 등 대중문화영역에서 다소 충격적이고 잡종적인 이미지들로 나타납니다. 이미 작가주의 영화와 같은 현대 예술의 장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그것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영화학 교수인 저는 이미지, 특히 동적인 이미지가 사유의 도구로서 인정받게 된 것을 환영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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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주목받고 있음을 고려할 때 어린 시절부터 영상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만일 그렇다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특히, 프랑스의 경우 영상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군요.
“프랑스에서 다소 체계적인 이미지 교육이 시작된 지 한 세대가 지났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영화를 좋아하는 전통이 숙성됐고 그 덕분에 이미지 교육에서 장애물들이 어렵지 않게 극복됐습니다. 하지만 이미지 교육은 여전히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고 갈 길도 멉니다. 물론 보다 효율적인 접근방법들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언어 이론만큼 정교한 이미지 이론의 정립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먼저 이미지를 제작하는 실천적 활동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말하면서 말을 배우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음악을 배우는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면서 이미지 만들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프랑스 학교들은 차근차근 디지털 도구들을 갖춰 가고 있습니다. 1년 전부터 문화성은 여러 종류의 DVD를 교육현장의 교사들과 함께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문화와 새로운 기법들을 연계하는 유용한 정책의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미지의 시대’의 미래에는 가상현실에서 벌어지는 컴퓨터 게임이 더욱더 위세를 떨칠 전망입니다. 그리고 장차 컴퓨터 게임과 영화와의 만남과 같은 새로운 가능성도 조심스레 언급되고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영화와 같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온라인상의 쌍방향성)란 바로 관객의 이중적 태도가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 앞에 놓여진 허구적 세계 안에 기꺼이 들어가고, 어느 정도까지 그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전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자유롭게 그것을 믿지 않고 거리를 두며 조종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온 라인 상의 인터랙티브 게임은 지금 현재 그런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인터랙티브 게임은 우리의 현실을 이중화시키는 헛된 환상의 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절대적으로 독창적인 (그리고 매우 강한) 감각적 흥분을 야기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감각은 매우 개인적인 것인 반면, 연극의 먼 후손인 영화는 감정과 감동의 사회화라는 중요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비록 20여 년부터 영화와 인터랙티비티의 결합을 꿈꾸었지만 그럴듯한 가시적인 결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거기에 매우 흥미로운 잡종적(하이브리드) 형태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이미 25년 전부터 매우 창의적이고 자신만만한 애니메이션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앞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영화가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합니다. 예술과 영화의 결합에 많은 관심을 가진 학자로서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영화는 이미지 대륙의 한 지방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매우 주목할 만한 영역입니다. 오직 영화만이 자신의 세기와 나란히 발맞추어 가며 자신의 세기(20세기)를 예술적, 미학적, 이데올로기적, 사회학적 그리고 정치적 차원 등 모든 차원에서 고루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의 어떤 예술도 영화만큼 성찰이나 사유를 촉발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각 나라에는 자국 영화가 있기 마련이지만 할리우드 영화는 자국에 국한된 국지적 영화가 아니라 보편적 영화, 즉 영화의 모델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할리우드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도입으로 경제적 기술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효율적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매우 놀라운 것은 단지 경제적 기술적 면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거의 완벽한 모델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할리우드의 이상적 이미지가 조금씩 퇴색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영향을 받았던 미국감독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롭기를 원하고 개성을 내세우려 합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영화가 자국 시장에서,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외국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겨루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영화의 헤게모니와 지배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우선 영화 제작의 국제화가 미국영화 자체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각 국의 자국 영화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잘 버텨주고 있습니다. 물론 짧은 기간 동안 성공을 거둔 자국영화의 성과를 너무 과대평가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최근 추세는 자국영화 제작을 장려하는 분위기이고 주요한 제작의 거점들이 다원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영화산업은 다른 영화들을 지배하려 했고 그 때문에 가장 우수한 영화인들을 끌어들여 자기들 출신 나라의 특성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대가로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영화의 명실상부한 고전적 모델을 구축했고 전 세계는 그 혜택을 입고 있기도 합니다. 전 세계의 TV 드라마에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미학적 규범들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영화가 아직 할리우드가 만들어 놓은 고전적 규범에 등을 돌릴 만한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영화라는 형태는 19세기 초 현대 소설의 발명으로 시작된 (소설적) 허구의 모험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하게) 특권화된 공간으로 앞으로도 한참동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이미지의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래된 이야기 예술에 여전히 애착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조화로우면서도 매우 창의롭게 이마주(image)의 힘과 언어(verb)의 힘을 결합시키는 이야기 예술입니다.”
정리=김형찬 기자 khc@donga.com
< 자크 오몽 소개문 >
자크 오몽 교수는 프랑스 그랑제콜(에콜 폴리테크니크)과 ‘국립 텔레커뮤니케이션 에콜’에서 수학한 후 미학 및 예술과학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렇게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든 그는 프랑스 텔리비전연구소의 엔지니어 및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고정비평가로도 활동했고, 현재는 파리 3대학(소르본느 누벨 대학) 영화학과 교수이자 파리 사회과학고등교육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또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각종 영상 교육을 주관하는 ‘영화예술사 콜레주’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영상학자로서 그의 학문적 시각은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고전적 의미의 회화미학에서 사진 및 현대의 다양한 대중 시각예술에 이르는 영상학 전체로 열려 있다. 그는 이미지를 인류학적, 사회학적, 문화적, 미학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다루며, 파리 사회과학고등교육원 영상학과의 진보적인 학제간 연구를 책임지고 있다. 이 밖에도 음악, 혹은 소리 예술과 시각 예술의 만남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최근 ‘영화와 오페라’ 같은 흥미 있는 강연을 열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영화를 해석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왜 해석을 하는가, 지금까지 나온 의미 있는 영화분석의 예들은 구체적으로 종래의 지적 전통, 특히 해석학적 전통에 비춰 어떻게 설명이 되며, 앞으로의 영화분석 방법론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등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문학이나 철학이론에 비견해 손색이 없는 고도의 정교함과 실제의 풍부한 비평의 예들을 가지고 영화학의 장에 학문적 깊이와 엄격함을 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밑거름으로 그는 중세의 성경 주해 단계부터 본격적인 해석학의 제1세대인 슐라이허마허, 다음 단계인 후설, 가다머, 리쾨르를 지나 리요타르와 데리다에 이르는 해석학의 전통을 되짚어보는 데 강의와 연구의 상당기간을 할애하고 있다. 성경 주해와 프로이트적 영화해석, 해석학의 다양한 이론과 영향력 있는 영화분석의 예들을 비교하며 구체적인 영상자료를 제시하는 시도도 잊지 않는다.
그의 저서는 ‘끝이 없는 시선’, ‘이마쥬’, ‘얼굴에서 영화까지’, ‘미학에서 현재까지’, ‘망각:장 뤽 고다르 이후의 영화 픽션들’, ‘필름이 생각하는 것은’, ‘영화이론들’ 등 십 여 권에 이른다. 주로 영화와 다른 예술이 맺고 있는 역사적 관계와 영화분석방법론에 관심을 둔 저작들이다.
김동윤(건국대 교수·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