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높은 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 어느 곳엔가 착한 거인들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히말라야 산봉우리가 동네 앞산과 같이 여겨질 정도로 몸체가 크고, 태평양 이스터섬의 거대한 석상을 세웠을 법한 숭고한 그런 거인들 말입니다.
한 영국 지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우연히 거인의 땅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별빛 아래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에서 거인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거대한 언덕처럼 보였습니다. 거인들은 일어서서 밤새도록 별들을 불러댔습니다. 무심한 사람의 귀에는 단조롭게 들릴 그 천상의 음악은 한없이 섬세한 울림으로 지리학자의 영혼을 이성의 한계 너머로 데려다 줬습니다.
거인들의 몸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절로 생겨난 복잡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몸이 워낙 커서 피부가 대기의 미세한 변화에도 반응하는 것이 지리학자의 눈에 보였습니다. 살랑거리는 미풍에도 몸을 떨었고, 금갈색 태양빛에도 이글거렸으며, 호수의 표면처럼 일렁이다가, 폭풍속 대양처럼 장엄하고 어두운 색조를 띠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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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는 거인의 땅에 다녀온 뒤 거인족에 대한 보고서를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그의 책은 찬사와 야유를 동시에 받으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이 논란을 뒤로 하고 다시 거인족의 땅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가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 있던 미얀마에 도착했을 때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섯 마리의 송아지가 끄는 마차에 실려 다가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의 머리가 보였습니다. 그는 온갖 소란 속에서 분노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혀 침묵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왔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그후 지리학자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서재를 가득 채웠던 책들은 모조리 기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기잡이배의 선원이 되어 바람과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따금 저녁 무렵의 선창가에서 그의 얘기에 열중한 채, 빙 둘러앉아 호기심어린 눈빛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수많은 여행담과 너른 바다와 대지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려줬습니다. 그러나 거인족에 대한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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