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할리우드, 파리 컬렉션 "파리 새옷 입다"

  • 입력 2002년 3월 14일 15시 38분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선보인  니트 모자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선보인 니트 모자
파리 프레타포르테의 하이라이트인 샤넬의 쇼는 예정된 시간에 시작되지 않았다.

스케줄에는 12일 오후 2시반이라고 돼 있었지만 샤넬로 차려입은 기자와 바이어들이 객석에 자리를 잡고 나서도 한참 지난 3시10분에야 쇼룸의 불이 꺼졌다.

카루젤 뒤 루브르(Carrousel du Louvre) 가브리엘룸과 들롬룸. 각각 1200명과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두 개 룸을 터서 만든 샤넬의 쇼룸은 파리 컬렉션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대여비는 3시간에 5000만원.

무대 가운데 자리잡은 벨기에의 팝 그룹 ‘비브 라 페트(Vive la F^ete)’가 강한 비트의 음악을 연주하자 샤넬을 입고 샤넬로 화장한 모델들이 하나 둘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우아하고 도도했던 샤넬은 10년쯤 젊어지고 실용적인 모습이었다.

셋째아이를 막 가졌다는 스텔라 테넌트와 에린 오코너, 마리아 칼라 등 몇몇 유명 모델을 제외하면 15세 미만의 앳된 신인 모델이 대부분이었다.

몸에 꼭 달라붙는 재킷과 코트에 색깔은 블랙 & 화이트. 여기에 터키색과 핑크 베이지가 추가되고 허리춤에는 늘어지는 벨트나 굵은 가죽 벨트가 어김없이 매어져 있었다.

가죽으로 만든 미니스커트가 등장하자 객석에 앉은 기자들에게 프렝탕 백화점의 컨셉트 매니저 나탈리 발론이 속삭였다.

“샤넬 라인을 창조했던 샤넬 여사가 살아 있었다면 기절했을 걸.” 50명의 모델이 80벌의 의상을 모두 선보이자 무대 뒤에서 청바지 차림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걸어나와 인사를 한 뒤 모델들과 엉켜 무대 뒤로 사라졌다.

어느 쇼나 마찬가지다. 오프닝은 예정 시간에서 적어도 30분은 늦어진다. 마지막에 나와 인사하는 디자이너는 청바지에 아디다스 운동화 차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자이너는 자기 옷에는 신경쓸 여유가 없다. 객석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모델의 마스카라까지 트집을 잡으며 면봉으로 지우고 다시 칠하게 한다. 최선의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냉정한 기자와 바이어들은 금방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 프레타포르테는 디자이너와 패션 전문기자 그리고 빅 바이어들이 모이는 세계 최대의 견본 시장이다. 2002, 2003년 가을 겨울을 겨냥한 파리 여성 프레타포르테 쇼(7∼15일)는 루브르 박물관을 중심으로 파리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주최 측인 파리의상협회의 스케줄에는 모두 95개의 쇼 일정이 적혀 있었다. 공식 스케줄에는 없는 ‘off schedule’ 쇼도 50여개 진행됐다.

쇼룸의 문턱은 높다. 디자이너의 초대장을 받은 기자와 바이어들 외에는 덩치 큰 안전 요원들이 가로막고 있는 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기자들은 유명 디자이너들 중심으로 장소를 옮겨다니며 쇼를 보고 평을 한다. “올해는 여성들이 와타나베 준야의 파워풀한 옷보다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즐거운 옷을 입으려 할 것 같다”는 식의 한마디 한마디가 쇼룸 곳곳으로 빠르게 번져간다.

디자이너들은 아예 홍보 담당인 아타셰 드 프레스를 매월 500달러 정도를 주고 연간 계약으로 고용해 홍보전에 대비한다. 아타셰 드 프레스의 임무는 홍보를 대행하는 디자이너의 쇼가 좋은 시간대에 좋은 장소에서 열리도록 주최측을 대상으로 로비하는 것, 많은 패션담당 기자들이 쇼에 오도록 하는 것, 신문이나 잡지에 한 컷이라도 옷 사진이 실리도록 하는 것이다. 칸이나 아카데미 등의 유명 영화제 시상식 때 줄리아 로버츠, 니콜 키드먼 같은 여배우들이 자신이 홍보하는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나오도록 로비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바이어들도 높은 안목을 가지고 유행을 만드는 데 한몫 거든다.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백화점이 아닌 숍에서 바이어가 한 사람 혹은 여러 디자이너의 옷을 모아 판매한다. 재고 부담은 바이어의 몫이어서 실패는 용납이 안 된다. 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이어들은 “뉴욕에서는 도나 카란의 이브닝 드레스로 재미봤어”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수트가 죽을 쒔는데 진은 잘 나가더라” 하고 판매 경험을 나누거나 “올 겨울은 여전히 블랙이 강세일 거야” “니트는 빨강과 따뜻한 오렌지는 괜찮지만 노랑과 밀리터리 그린은 아닌 것 같아” 하며 유행을 점치기도 한다.

패션쇼를 앞둔 백스테이지는 스태프의 분주한 손길과 모델들의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11일 열린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쇼 백스테이지에서 메이크업에 한창인 스태프.

기자들과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모델들이다. 지젤이나 카르멘 같은 톱모델은 쇼에 1회 출연하는데 1만 달러(약 1300만원)부터 개런티 흥정이 시작되지만 디자이너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 실제 몸값은 이보다 훨씬 올라간다.

하지만 이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톱모델에 한한 이야기일 뿐이다. 8일 한국 디자이너 박춘무의 피팅룸에서 만난 슬로베니아 출신의 스베트라나(18). 경력 1년이 안되는 풋내기 모델이지만 일년의 절반은 파리, 나머지는 뉴욕과 런던을 비행기로 오가며 일하는 제트족이다. 스베트라나는 이번 컬렉션 참가를 위해 2주일 전 파리에 도착했다. 오전 9시면 스케줄을 관리하는 에이전시 사무실에 들러 그날의 오디션 스케줄을 받는다. 지하철을 타거나 지도를 보며 직접 오토바이를 몰아 파리 곳곳에 흩어져있는 디자이너들의 피팅룸을 순회한다.

피팅룸에 들어서면 스베트라나는 먼저 자신의 사진과 신체 치수가 적힌 명함을 건넨다. ‘키 175㎝, 가슴 34, 허리 23, 엉덩이 35인치. 발 260㎜, 갈색 긴머리, 눈색깔 헤이즐’.

캐스팅을 담당한 스타일리스트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스타일은 좋은데 발이 너무 크네요” 하고 보자마자 퇴짜를 놓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옷을 입고 걸어보라는 주문을 받지만 최종 캐스팅 여부는 쇼 전날에야 알 수 있다. 실제 쇼 무대에 서는 모델들은 한 디자이너당 대개 17, 18명. 그러나 오디션에는 평균 350명의 모델이 몰려든다. 스베트라나는 아직 그 350명 중 하나일 뿐이다. 한 시즌에 6개 정도의 쇼에 캐스팅되는 그녀의 모델료는 건당 50만원 안팎.

스베트라나는 톱모델이 돼 뉴욕에서 활동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왜 파리가 아니라 뉴욕인가”라고 물었더니 “뉴욕이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란다.

언제부터인가 프레타 포르테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상업적 성공 순위를 매기고 싶으면 맨해튼 62번가의 ‘바니스 뉴욕’ 2층 패션관에서의 매출을 따져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파리의 브랜드들은 미국 시장을 아는 미국과 영국 디자이너를 속속 영입하고 있다. 루이뷔통은 마크 제이콥스(미), 크리스찬 디오르는 존 갈리아노(영), 셀린느는 마이클 코어스(미), 이브 생 로랑은 톰 포드(미)를 기용했다. 이브 생 로랑은 은퇴라는 모양새를 차리긴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디자이너 자리를 미국인 톰 포드에게 뺏긴 거나 다름 없다. 이 때문에 파리 패션가에서는 ”패션의 수도 파리가 영미 연합군에 폭격당했다”는 과장섞인 푸념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파리는 지금 불타고 있는가.

독특한 니트 의류만을 전문적으로 발표해 주목받는 신예 디자이너 탐 반 링엔(Tom Van Lingen)은 “어느 곳도 파리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자부했다. “패션의 생명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독창성이고 파리만큼 새로운 실험에 관대한 무대는 없다. 상업성을 강조하는 밀라노나 뉴욕은 자본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만을 가진 신인이 주목받을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새로운 실험이 없는 곳에 진보가 있을수 있는가.”

파리〓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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